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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난 바나나킥 안배워…스트레이트로 가며 국회 선진화 이끌것”

등록 2012-08-26 19:31

강창희 국회의장이 지난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장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강창희 국회의장이 지난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장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강창희 국회의장

강창희 국회의장

강창희(66) 국회의장은 ‘스트레이트’한 사람이다. 1980년 민정당 창당 요원으로 정치를 시작한 이후 32년의 정치역정도 직선에 가깝다. 곤란한 일을 만나도 적당히 둘러가지 않으며, 말할 때도 결코 에두르는 법이 없다. 많이 부딪치고 깨진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 말 ‘민주당 의원 꿔오기’에 반대했다가 자민련에서 제명당한 것은 대표적 사례다.

그의 직선적인 성격은 여전했다. 인터뷰 예정 시간을 불과 두세 시간 앞둔 23일 오후, 국회의장실에서 인터뷰가 안 될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강 의장이 질문지를 보고는 ‘7인회와 민정당 창당, 하나회 등의 얘기를 또다시 해야 하느냐’며 안 하겠다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그에게 건너간 첫 질문은 “아직도 바나나킥을 안 배우셨느냐?”였고, 돌아온 첫 대답은 “나이가 있는데 새삼 무슨 바나나킥? 나 이대로 스트레이트로 갈래.” 이 선문답은 자민련 시절 제이피(JP·김종필 전 총재)가 “강창희는 스트레이트적 인간”이라고 타박했을 때 그가 “저는 아직 바나나킥으로 골을 넣을 때가 안 됐다”고 응답했던 것을 빗댄 얘기였다. 인터뷰를 거부하려 했던 데 대한 은근한 핀잔이기도 했지만 답변은 역시 ‘스트레이트 강’다웠다.

인터뷰/ 김종철 기자 phillkim@hani.co.kr

19대 국회는 과거와 달리 여야 합의가 있어야 국회 운영이 가능하다. 국회의장이 청와대와 여당 편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직권상정권이 사라졌다. 따라서 새로운 선진 국회를 위해서는 칼은 없되 권위와 위엄이 있는 국회의장의 존재가 절실하다. “청와대 눈치 안 보겠다”는 자신의 말을 스트레이트하게 지키면 의회사에 뚜렷한 이름을 남기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국회 선진화를 위한 국회법 개정으로 국회 운영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국회의장의 역할이 다를 수밖에 없을 텐데?

“선진화법 때문에 19대 국회가 잘되겠느냐는 견해가 많다. 저도 그런 우려를 많이 한다. 그러나 결국 정치인들이 따라야 하고 두려워하는 게 여론이다. 이제는 국민이 여론으로 판가름을 해주면 국회는 따를 수밖에 없다. 협의가 안 되고, 여야가 대립하면 이걸 언론이 정확하고 공정하게 보도해서 국민이 판단하게 해달라. 그럼 어느 쪽으로 기울 거다. 그러면 풀린다. 대표적인 게 김병화(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다. 여론 추이가 바뀌면서 풀리더라.”

여야, 김병화 문제때처럼 대립할땐
원내대표 쫓아다니며 중재로 풀것
19대 국회, 국민여론 더 두려워해야

-의장이 할 수 있는 부분은 뭔가?

“의장은 성급하게 판단해서 직권상정하기보다는 한 템포 늦춰서 여론을 보고 여론을 환기하는 게 중요하다. 내가 새누리당에서 의장 후보로 선출될 때 한 얘기가 있다. 의장이 되면 여당엔 한 번 묻고, 야당엔 두 번 묻고, 국민에게는 세 번 묻겠다고 했다. 그 말대로 앞으로 문제가 생기면 여야 원내대표를 불러서 얘기하겠다. 의장실에 안 오면 내가 그들 방에 쫓아가겠다. 그래서 적극 중재해서 풀겠다. 김병화 대법관 문제 때도 내가 이한구 원내대표(새누리당) 방에 갔다. (김병화로는) 안 되지 않겠느냐, 그러니 태도를 바꾸라고 했다. 그랬더니 (상황이) 급변해서 그렇게 됐다. 앞으로도 첨예한 대립이 있을 땐 나서겠다. 그렇게 풀어가면 선진화법이 조금씩 정착하지 않겠나. 물론 어렵긴 할 거다.”

-지난 7월 임시국회에서 국무총리 해임건의안을 직권상정 처리한 데 대해 새누리당이 독단적인 결정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의장의 직권상정 발동은 국회법 개정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국무총리 해임건의안 등 인사에 관한 사항은 의장에게 주어진 극소의 권한 중 하나다. 인사에 관한 안건은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처리하도록 국회법에 시한이 정해져 있다. 질질 시간을 끌어서 넘길 수도 있지만 그것은 직권상정해서 처리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이다. 물론 법안 등 일반 안건은 의장이 직권상정을 하지 못한다.”

-역대 국회의장 가운데 역할모델이 있는가?

“오래된 분들은 겪어보질 않아서 모르겠다. 그동안 경험해본 의장으로선 이만섭 의장이 강단 있고 소신껏 했다.”

-이 전 의장은 국회 위상을 지키려 많이 노력했던 것 같다.

“맞다. 그렇게 하셨다. 의장을 두 번이나 했다.”

이만섭(79) 전 의장은 14대 국회 전반기와 16대 국회 전반기 등 두 번이나 국회의장을 역임했다. 그가 의장을 맡았던 때에는 예산안이나 법안에 대한 날치기 처리가 한 번도 없었다. 이 전 의장은 2010년 12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난장판 국회를 없애기 위해선 국회의장이 청와대 눈치를 보지 말아야 한다. 나는 국회의장을 하면서 청와대의 무리한 요청은 끝까지 거부했다. 입법부의 수장인 국회의장이 입법부의 권위를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강 의장은 친박계 핵심 중진 인사였다. 여당의 유력한 대선주자인 박근혜 후보와의 긴밀한 관계가 국회 운영에서 걸림돌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그건 걱정 안 해도 된다. 그 정도를 극복 못할 입장이 아니다. 이번에 박근혜 전 대표가 후보가 됐을 때도 전화 한 번 안 했다. 비서실을 통해 난 화분 하나 보냈을 뿐이다. 이건 민주당 후보에게도 똑같이 할 예정이다. 제가 자민련 시절 의원 꿔오기에 반대하면서 제이피(JP), 이한동과 싸워서 제명당한 사람인데 그런 무분별한 일은 안 할 거다. 여야가 보고 있고, 제일 무서운 건 국민의 눈이다. 국회의장이 어디 경도돼서 그런 처신을 안 할 것이다. 박 전 대표도 그런 걸 요구할 사람이 아니다.”

친박계 핵심 중진인사이긴 했지만
어디 경도되거나 청와대 눈치 안봐
박근혜쪽 모임 7인회 가끔 밥먹는 정도

-과거 국회의장들을 보면 청와대 입김에 상당히 휘둘리곤 했다.

“걱정하지 마라. 제가 스트레이트적 인간이지 않은가. 하하하.”

그는 인터뷰 전에는 박근혜 대선후보 쪽 원로인사들의 모임인 이른바 ‘7인회’를 거론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보였으나, 답변에서는 “가끔 밥 먹으면서 동네 아줌마들처럼 떠드는 수준의 모임”이라고 자세하게 설명했다.

-현재 국회 현안으로는 통합진보당의 이석기·김재연 의원 자격심사 문제가 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윤리위 자격심사안을 공동으로 발의하기로 했는데 이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양당이 합의해서 하는 거니 받아주는 거다. 의장이 둘을 데려와서 제명하겠다는 거 아니다. 그런 기능이 있다면 하는 것이지, 그걸 꼭 해야 한다, 안 해야 한다 이런 건 없다.”

-당 내부 문제를 국회가 심사해서 의원직을 제명하는 게 맞느냐 하는 문제제기가 있다.

“윤리위원회에서 제명할 수 있도록 규정을 만들어놨다면 할 수 있는 거다. 만약에 제명하는 게 불합리하다면 (앞으로) 제도를 고쳐야 한다. 하여튼 규정이 있으니 이걸 들고나온 것인데 현실적으로 잘되겠느냐. 추이를 두고 봐야 한다.”

-5·16 등 과거사 문제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데 어떻게 보나?

“김황식 총리가 그 부분에 대해 국회에서 참 잘 (대처)하더라. 뭐라고 했느냐 하면, 왜 정쟁을 하려면 자기들끼리 하지, 중립지대인 나를 끌어들이느냐는 거다. 나도 똑같다. 국회의장도 중립지대에 있어야 하는데, 쿠데타라고 하겠나, 우국충정이라고 하겠나. 중립지대에 있는 나를 끌어들이지 마라.”

이석기·김재연 자격심사안 발의 문제
양당이 합의해서 하니까 받아주는 것
난 중립…5·16 등 과거사 문제 말못해

-정치를 5공화국에서 시작했다. 계기는 뭐였나?

“저는 1979년에 진해에 있는 육군대학에 공부하러 갔다가 80년에는 교관으로 있었다. 그래서 10·26이나 12·12, 5·18을 다 피해갔다. 하루는 당시 외교안보연구원장이던 강영훈 전 총리가 초빙강의를 하면서 애국심을 강조하는데 심금을 울리더라. 강 전 총리를 김해공항에 모셔다 드릴 때 육군사관생도 시절의 소책자인 <군인정신의 양식>에 있던 핸슨 볼드윈이란 전사작가가 쓴 글이 생각났다. ‘군은 강력해야 한다, 그러나 전지전능해선 안 된다. 군은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지배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이 옳다.

그런데 군대가 이미 12·12와 5·18로 정치에 다시 개입했다. 이제 이것을 잘 매듭짓지 않으면 또 동남아처럼 쿠데타가 연속될 거라고 생각했다. 군이 두번째 정치개입한 건데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정치하겠다고 마음먹고 청와대에 있던 친구 황진하를 찾아갔다. 그 뒤 전역을 하고 민정당 창당 작업에 실무를 맡으면서 정치를 시작했다.”

-군이 정치에 나왔으니 성공해야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이번에 군이 개입을 했는데 또 실패해서 군이 나오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앞으로는 군이 지배하거나 전지전능해선 안 되겠다는 것이었다. 정상적 민주주의로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보고, 그래서 의회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나회 활동은 어떻게 된 건가?

“육사에서 제가 축구선수를 했는데, 그때 공수단 부단장으로 있던 전두환 소령이 낙하훈련 때 받은 생명수당을 모은 돈으로 축구부에 빵과 불고기를 자주 사주면서 알게 됐다. 졸업하고 강원도 양구의 2사단에 부대를 배치받았는데 당시 청와대 경비하는 30경비대장이던 전 전 대통령이 ‘6개월 있다가 우리 부대에 와라’라고 하더라. 11개월 뒤에 30경비대 소대장으로 발령이 나서 갔더니 그는 육군본부 서종철 당시 참모총장 수석보로 갔더라. 그래서 같이 근무를 한 적이 없다. 청와대 30경비대는 하나회 소굴이었다. 나도 그래서 하나회가 됐던 거다. 내가 우리 동기 하나회의 대장이었다. 안광찬, 권경석 등을 다 끌어들였다. 하지만 그때는 지원서를 낸 것도 아니고, 하나회라는 이름도 없었다. 신문 보고 그게 그거냐 그렇게 알았다. 그때 (모임에) 가면 훈시만 받다가 끝났다.”

그는 하나회에 대해 자전적 에세이인 <열정의 시대>에서 “국가에 대한 충성심 하나로 뭉치고 명령체계가 생명인 공조직에서 사조직이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 대해서는 나 또한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이해한 하나회는 어느 사회나 조직에 존재하게 마련인 일종의 리딩그룹 같은 것이 아니었나 짐작된다”고 돌이켰다.

30경비대 근무때 하나회 많아 회원 돼
이름도 없던 모임이라 신문 보고 알아
한-일갈등 해소, 의회차원 조용히 지원

-17~18대 8년이나 야인으로 있었다. 국회 바깥에서 보니 정치권이 어떻던가?

“바깥에서 보니까 국민이 정치를 어떻게 보는지 알겠더라. 그래서 안철수 현상이 벌어진 이유도 알겠더라. 그동안 정권이 여러번 바뀌는데도 역시 정당은 니나 내나 그놈이 그놈이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을 만큼 기존 정치권이 불신을 받는 게 보이더라. 그런데 그렇다고 안철수 현상, 이건 아니다. 안철수 현상이 일어나면 안 된다. 어떻게 아무것도 안 하고, 월반을 해도 초등학교 졸업하고 하버드나 스탠퍼드를 가도 가야지, 초등학교 졸업도 하지 않고 하버드 가면 정상적으로 되겠느냐. 정당 불신을 절감했다. 내 힘으로 다 할 수는 없는 거고, 문제제기라도 해야 한다. 청와대 눈치 안 보겠다는 건 그런 맥락에서 하는 말이다.”

-후배 정치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국회의원들이 공부를 안 한다. 나는 의원 시절 아무리 바빠도 가끔 공허해지면 책 보따리를 싸서 호텔이나 콘도에 들어갔다. 책도 보고 못 봤던 좋은 다큐프로그램 등을 녹화해서 하루 종일 봤다. 또 마음 수련회도 1년에 며칠씩 가서 했다. 의원들이 너무 현실에만 매몰되면 안 된다. 자기 직무 공부를 하고, 인격 공부도 해야 한다.”

-올해 대선의 화두는 뭐라고 보나?

“중립을 지키려면 그것도 얘기를 하면 안 된다.”

-한때 내각제 전사라는 별명까지 얻었는데 아직도 내각제 개헌 의지가 강한가?

“디제이피 연대해서 김대중 대통령이 됐는데, 내각제 약속을 안 지켜서 장관을 사표 냈다. 당시엔 선거비용도 그렇고 대통령제 폐해도 많고 해서 대통령 직선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뒤에 정권이 엎치락뒤치락했다. 이렇게까지 비용을 치르면서 대통령제로 왔으니 대통령제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내각제는 안 해봐서 어떤 함정이 있는지 모른다. 다만, 지금 나타난 대통령제의 불합리한 부분을 4년 중임제 등으로 고치면서 그대로 갔으면 좋겠다.”

-한-일 관계가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우리 땅에 우리 지도자가 간다는 지극히 당연한 명제로, 잘 이뤄진 것이라 본다. 한-일 양국간의 외교전이 매우 첨예한데 치밀하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너무 감정적으로 나가는 것은 안 좋다. 노다 일본 총리의 계속되는 강경 발언과 일본 의회의 성명서 채택 등에 주목하면서 우리 국회도 관계 당국과 긴밀히 협의해 대응해 나갈 생각이다.”

-국회 차원에서 양국관계를 풀 방안이 없는가?

“지금은 양쪽이 서로 (더이상) 거론 않고 쿨다운 해야 한다. 그 뒤에 한일의원연맹 우리 쪽이 다시 구성되면 의회 차원의 교류도 하고, 의장도 조용히 지원해야지.”

-남북관계도 새 정부 들어서면 해결해야 할 우선순위 과제 중 하나인데, 국회 차원의 교류를 구상하고 있나?

“누가 정권을 잡든 다음 정부는 대화 기조로 바뀌지 않겠나. 그때 의회도 대북관계를 정부와 같이 가는 게 맞지 않겠나. 남북관계도 인간관계와 똑같다. 북한에 대해 우리가 큰 시혜를 베푸는 것 같은 태도를 취하는 건 옳지 않다.”

강 의장은 평소 시를 몇 수씩 암송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 요리도 즐긴다. 야인 시절에는 출근하는 부인을 위해 된장국을 끓여 아침밥을 차리기도 했다. 지금도 가끔 요리하느냐는 질문에는 “의장 공관 환경이 그러질 못해서 지금은 쉬고 있다”고 말했다. 시는 김용석 시인의 ‘가을이 오면’을 멋들어지게 낭송했다. 요리와 시는 스트레이트한 그가 다듬는 인생의 ‘바나나킥’ 같아 보였다.

정리 김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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