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집 나서며 응답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대선 출마 고민이 길어질 것으로 보이면서, 그의 속내를 둘러싼 여러 시나리오들이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이 전 총재는 30일 외부 오찬을 위해 서빙고동 자택을 나서면서 기자들과 만나 대선 출마설에 대해 “아직은 말씀드릴 게 없다. 앞으로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만 말했다. 이 전 총재는 최근 자택을 찾은 한나라당의 한 의원에게 “차일시 피일시”(此一時 彼一時,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라는 <맹자>의 공손추편을 인용한 선문답을 건넸다고 한다. 듣기에 따라서는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때와 지금은 다르다는 뉘앙스로도 들린다. 이 전 총재가 출마를 강행할 경우, 예상되는 시나리오도 여러 갈래다.
■ 출마 후 단일화? =이 전 총재 측근이었던 서상목 전 의원은 30일 <한국방송> 라디오에 나와 “저쪽(범여권) 후보가 여럿이지만, 보수는 한 명밖에 없다. (보수도) 복수 후보가 있어야 이명박 후보를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행 선거법상 후보등록(11월25~26일) 이후에는 추가 등록이 불가능해, 만일 이 후보 신변에 이상이 생긴다면 한나라당은 후보없는 대선을 치르게 될 가능성을 이야기한 것이다. 서 전 의원은 “이 전 총재가 출마를 결정한다면 당연히 단일화가 전제돼야 한다. 마지막까지 (완주)해서 그 때문에 좌파정권이 연장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서 전 의원의 이 발언은 이 전 총재의 출마 명분을 만들고 한나라당 지지층의 비판을 희석하려는 성격이 짙다는 평가가 많다. ‘친박’ 성향의 이계진 의원은 이를 두고 “살아계신 부모 앞에서 장례 준비를 하는 것”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 내년 총선을 겨냥한 주변인사들 집결? =이 전 총재의 최근 행보에는 주변의 옛 인사들의 부추김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관측이 계속 나온다. 이 전 총재가 출마할 경우, 이들이 재기할 수 있는 정치적 활동공간이 생겨나고 자연스레 내년 총선 출마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전 총재의 측근인 이흥주 특보는 이에 대해 “내년 총선 등 정치를 계속 할 생각은 전혀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대선 출마를 결단하는 시기에 대해선 “파급효과가 커 금명간 결정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고 말해, 이 전 총재 고민이 오래 지속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 후보 쪽이 생각할 수 있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이렇다. ‘11월 말 비비케이(BBK) 사건 장본인 김경준씨 귀국-검찰 수사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남-이명박 후보 지지율 급락(박근혜 전 대표는 선거법상 출마 불가능)-이회창 전 총재 보수진영 대안 급부상-후보 단일화가 이명박 아닌 이회창으로.’ 물론 이런 시나리오는 이 전 총재 쪽의 희망사항일 뿐이란 지적이 정치권에선 많이 나온다.
권태호 기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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