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 뒤 박근혜 전 대표 주요 발언
이명박에 ‘깊은 불신’…내식구 보호에 팔 걷어
지난 8월 경선 뒤 처음 터져나온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이명박 대통령후보 비판 발언에 당 안팎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지난 15일 기자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요즘 많은 전화를 받는 데 그 내용이 (당이 친박 성향의 사무처 당직자들을) 임기가 남았는데도 제거하고 한직으로 보내고 잘라내고 한다는 거다. 저를 도운 사람들이 죄인인가요”라고 말했다.
경선 뒤 이 후보에 관한 언급을 피해온 박 전 대표로선 이례적으로 강도높은 비판이었다. 발언의 파장을 우려한 한 측근 의원이 즉석에서 기자들에게 비보도를 요청하자, 박 전 대표는 “너무 억압하지는 마시라”며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박 전 대표의 발언은 최근 실시한 중앙·지역 사무처 당직자 인사에서 자기 쪽 인사들이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판단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한 측근은 “박 전 대표를 도운 중앙위원회 서울시 연합회장이 사퇴압력을 받고 있고, 박 전 대표의 보좌역을 지낸 이 아무개 경북도당 사무처장도 교체됐다”며 “불가항력인 이들이 불이익을 받은 데 대해 박 전 대표가 아주 속상해했다”고 전했다. 발언의 대상이 의원들이 아닌 사무처 당직자들이라 ‘당내 세력화’나 ‘편가르기’란 정치적 오해를 피할 수 있다는 점도 발언 수위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발언은 돌발적인 것이 아니라 이 후보 쪽에 대한 오랜 불신과 실망 끝에 나온 것이란 해석이 많다. 한 부산지역 측근 의원은 “박 전 대표는 이 후보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란 인상을 강하게 갖고 있다. 그런데 이 후보가 화합을 말하면서도 각종 인사에선 그의 측근과 참모들이 기득권을 잡으려는 것을 보고 더욱 실망감이 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한 영남지역 재선의원은 “박 전 대표가 ‘참모들의 전횡’을 통제하지 않는 이 후보에게 일침을 놨다”고 평했다.
이번 발언이 친 박근혜 진영의 결속을 다지는 효과를 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최근 최고위원 선거에서 측근인 김무성 의원의 출마를 접도록 권유한 것을 두고 “최고위원회에 들어가 보호막 구실을 할 사람을 왜 주저앉히느냐”, “너무 자기 사람을 안 챙기는 것 아니냐”는 진영 내부의 불만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는 이를 ‘충격’이라고도 표현했다. 한 측근은 “이번 발언이 이런 최근의 분위기와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앞으로 박 전 대표가 종종 이 후보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박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 후보 쪽 인사들은 불쾌감을 표시했다. 한 초선 의원은 “박 전 대표가 경선 때 고생한 자기편 사람들의 불만을 주로 듣다보니 이런 인식을 하게 된 것 같다”며 “이-박 대결구도란 흘러간 노래를 다시 트는 것은 과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한 당직자도 “백의종군 한다고 한 말과 어긋나 보인다. 경선 뒤 많이 도와주지도 않았으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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