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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기자 접고 노동운동가의 길…세번째 대선 ‘인생3막의 꿈’

등록 2007-09-16 21:30수정 2007-09-16 21:42

권영길 누구인가/ 캐리커쳐 민노당 제공
권영길 누구인가/ 캐리커쳐 민노당 제공
권영길 누구인가
오십을 바라보던 47살, 노동운동의 거친 길에 들어섰다. 오십을 훌쩍 넘긴 나이엔 총파업을 꿈꿨다. ‘일하는 사람들’의 정당 건설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이제 육십을 훨씬 넘은 나이, 세번째로 대통령선거에 도전한다. 권영길(66). 민주노동당은 그를 다시 선택했다.

많은 사람들은 ‘권영길’이라고 하면 미소를 떠올린다. 활짝 웃을 때면 눈매가 둥근 산처럼 구부러진다. 벙긋 벌어지는 입가에 잡히는 몇가닥 주름도 편안하다. 그 얼굴이 얼마나 많은 고난을 부대껴왔는지는 가늠하기 쉽지 않다.


①빨치산으로 활동하다 총에 맞아 목숨을 잃은 아버지와 함께 ②<서울신문>파리특파원 시절 에펠탑 앞에서 ③1997년 노동법 개악에 맞서기 위한 총파업때 외국 지지자들과 함께 ④1997년 진보진영에서 꾸린 ‘국민승리21’의 대선후보 당시 ⑤2000년 상가 임대차 보호운동 토론회에서 참가해서
①빨치산으로 활동하다 총에 맞아 목숨을 잃은 아버지와 함께 ②<서울신문>파리특파원 시절 에펠탑 앞에서 ③1997년 노동법 개악에 맞서기 위한 총파업때 외국 지지자들과 함께 ④1997년 진보진영에서 꾸린 ‘국민승리21’의 대선후보 당시 ⑤2000년 상가 임대차 보호운동 토론회에서 참가해서
어린 시절, 그는 작은 아버지의 손에서 자라났다. 13살 때 그의 아버지 권우현이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빈 자리는, 할아버지와 숙부가 메웠다. 가난하고 외로웠지만, 권영길은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독서회, 야학 모임 등을 꾸리면서 사회에 눈을 뜨게 된다. 서울대 농대에 입학한 것도 농민운동을 꿈꿨기 때문이라고 한다.

졸업 뒤 <서울신문>에 입사한 그는 8년간의 특파원 생활을 하면서 기자로서의 절정기를 맞는다. 1987년 6월항쟁의 벅찬 감동을 현장에서 느끼지 못하고, 파리의 도서관에서 68혁명을 연구하는 걸로 대신했던 그는 88년 귀국하자마자, 신문사 노조에 가입하고 언론노동조합연맹 초대 위원장을 맡는다. 노동운동가로서의 인생 제2막이 시작된 것이다.

노동운동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었다. 1994년 철도파업 때 전국노조대표자협의회 회장직을 맡고 있었던 그는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을 위반한 혐의로 2년간 한뎃잠을 자는 고된 수배생활을 하게 된다.

노동운동은 진보정당 건설 운동의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진보 진영에서 꾸린 ‘국민승리21’에서 대선 후보로 추대됐으며, 2000년엔 민주노동당의 초대 당대표를 맡아 2002년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로 출마했다. 2004년 민주노동당 최초의 지역구 의원(경남 창원을)에 당선됐다.

그가 이처럼 지속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신뢰와 지지를 얻게 된 데엔 모나지 않은 사고와 유연한 자세, 그리고 서두르지 않는 특유의 품성 탓이 크다. 1995년 말 총파업 때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고심한 끝에 병원·지하철 등 공공부문의 파업을 잠정 중단해 더많은 국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낸 것 등은 그의 뛰어난 균형감각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그는 또한 주변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⑥ 2004총선 창원 출마 당선 ⑦2007 경선 기간동안 당이 주최한 행사에서 다른 두 후보와 함께 재미있는 자세를 취하며
⑥ 2004총선 창원 출마 당선 ⑦2007 경선 기간동안 당이 주최한 행사에서 다른 두 후보와 함께 재미있는 자세를 취하며
초창기부터 민주노동당에서 활동한 사람들은, 권영길의 ‘봉고차 투어’를 가장 인상적인 순간으로 꼽는다. 2000년 1월 창당했으나 석달 뒤인 4월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대참패를 맛본다. 민주노동당 이름을 걸고 출마한 후보 20여명이 모두 떨어진 것이다. 이때 당 대표였던 권영길은 주저앉는 대신, 봉고차를 한 대 구입해 전국을 돌며 ‘10만km 대장정’을 벌였다. 노동자·농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밤을 새며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설득했다.


그러나 이번 경선은 ‘권영길식 정치’가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는 걸 일깨워줬다. 사람들을 만나되, 그들을 설득할 콘텐츠와 비전을 좀더 구체적으로 보여주길 원한다는 걸 보여줬다. 세번째 도전 앞에 선 권영길에겐 묵직한 과제가 놓여 있다.

<권영길 후보 약력>

△1941년 11월5일 일본 야마구치현 출생

△서울대 농대 잠사학과 졸업(1969년)

△서울신문 기자, 파리 특파원(1971~87년)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1~3대 위원장(1988~94년)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1996년~97년)

△15대 대선 ‘국민승리21’ 후보(1997년)

△민주노동당 초대 당 대표(2000년)

△16대 대선 민주노동당 후보(2002년)

△17대 국회의원(2004년~)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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