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7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지방재정 파탄 해결을 위한 민주당 지방정부 긴급 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오는 29일 의원총회에서 내년 총선 비례대표 선출 방식을 논의하기로 한 가운데, 당 안팎에서 이재명 대표의 ‘결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 이 대표는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정당 득표율을 비례 의석에 일부 연동해 민심을 더 정확히 반영하는 제도) 유지와 ‘위성정당 방지’를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최근엔 ‘병립형 비례대표제’(정당 득표율로만 비례 의석을 나누는 제도)로 회귀하자는 국민의힘 요구를 수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데도 일절 함구하고 있어서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인 이탄희 민주당 의원은 27일 문화방송(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비례대표 선출 방식과 관련해 “(이재명 대표의) 침묵이 더 길어지면 좋지 않다. 이제는 결단해야 될 때”라고 촉구했다. 여야 간 선거제 협상이 공전하는 상황에서 이 대표가 준연동형 비례제를 유지하자고 못을 박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주류 의원들이 꾸린 ‘원칙과 상식’은 전날 “선거제 퇴행(병립형 회귀) 여부를 놓고 고민하는 것 자체가 민주당 정신, 민주당의 길에서 탈선하는 것”이라며 위성정당 방지법 입법에 나서라고 주장했다.
지난 대선 때 ‘정치 개혁’을 고리로 이 대표와 후보 단일화를 한 민주당 소속 김동연 경기지사도 같은 날 페이스북에 “병립형으로 회귀해서는 안 된다. 정치판을 사기의 장으로 몰았던 위성정당과 같은 꼼수도 안 된다”고 적었다. 앞서 지난 22일엔 민주당 의원 53명이 ‘위성정당 방지법 당론 채택’ 성명에 동참했는데, 여기엔 친명계로 분류되는 ‘처럼회’의 민형배·황운하 의원 등도 이름을 올렸다. 2020년 총선 때처럼 ‘꼼수 위성정당’ 창당에 나섰다간 역풍을 맞을 수 있단 우려가 큰 까닭이다. 위성정당 방지법은 지역구에 일정 수 이상 후보를 내는 정당은 의무적으로 비례대표 후보도 일정 비율 이상 내도록 하는 게 뼈대다.
정치 개혁을 약속한 이 대표가 사방에서 쏟아지는 압박에도 입을 다물고 있는 건, 선거제 개편이 내년 총선 성적표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총선 결과는 이 대표의 정치적 미래에 연동될 수밖에 없다. ‘개혁론자’들의 요구대로 준연동형을 유지하되 국민의힘만 위성정당을 만들 경우, 민주당 비례 의석이 국민의힘보다 최소 20석~최대 35석 적을 수 있다는 보고서가 당 안팎에 공유되는 등 ‘준연동형 불안감’이 크다는 점도 이 대표가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이유다.
선거제 논의 상황을 잘 아는 한 정치권 인사는 “(국민의힘 요구대로) 병립형을 선택해 민주당 단독으로 제1당이 되면 이 대표에게 더할 나위 없는 결과겠지만, 만약 패배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다. 반면 준연동형을 선택해 민주당이 패배한다면, 책임론은 나오겠지만 야권 지도자로서 명분은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이 대표가 병립형 회귀에 기울었던 것도 사실이나 여러모로 따져본 뒤 현재는 ‘제1당 욕망’과 ‘연합정치가 거둘 효과’ 사이에서 고민이 깊은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침묵은 길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대표 쪽 관계자는 한겨레에 “의원총회는 물론 여당의 입장, 여야의 협상 상황을 지켜본 뒤 종합해 이 대표가 입장을 내지 않을까 한다”며 “지금 이 대표가 입장을 내면 우리(민주당)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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