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뒤 박광온 원내대표와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침통한 표정을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부결 호소’에도 불구하고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 대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자 민주당은 대혼돈에 빠졌다. 표결 직후 지도부를 비롯한 친이재명계 의원, 원외 인사들은 “민주당 의원들이 개가 된 날”(김병기 의원)이라고 거친 분노를 쏟아냈다. 책임 소재를 묻는 당내 여론에 박광온 원내대표를 비롯한 원내대표단은 즉각 사퇴했고, 조정식 사무총장을 비롯해 당직을 맡은 의원들은 사의를 밝혔다.
이날 단식으로 입원 중인 이 대표 등을 제외한 295명의 여야 의원이 본회의에 참석한 가운데 무기명 투표로 이뤄진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가결표’는 149표로 집계됐다. 국외 출장 중인 박진 의원을 뺀 국민의힘 110명과 당론으로 체포동의안 가결 뜻을 밝힌 정의당(6명)·시대전환(1명)·한국의희망(1명), 여당 성향 무소속(2명)을 더한 120명에다, 29명의 민주당 또는 민주당 성향 무소속 의원이 추가로 ‘찬성’에 동참한 셈이다. 여기에 기권 6표, 무효 4표를 더하면 이탈자는 39명에 이른다. 2월 1차 체포동의안 때 민주당 이탈표가 가결 18표, 기권 9표, 무효표 11표로 추정됐던 걸 고려하면, 전체 규모는 38명에서 39명으로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가결을 선택한 의원이 11명가량 늘어난 것이다.
게다가 1차 표결 때와 달리 이번 표결을 앞두고는 당내에서 표결 직전까지 치열한 물밑 논의가 잇따랐다. 40명에 육박하는 이탈표는 사실상 ‘조직된 표’로 봐야 한단 뜻이다. 22일째 단식을 이어온 이 대표가 앞서 20일 직접 부결 당부까지 한 상황에서 민주당 의원 일부가 조직적 가결표를 던진 데엔 ‘방탄정당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명분이 크게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가 지난 6월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이미 밝힌 마당에 부결에 나서면 1차 체포동의안 때보다 더 큰 비판을 받을 수 있다”(비명계 의원)는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에 분노한 이 대표 지지자들이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에서 국회로 향하는 통로를 가로막은 철제 차단막을 들어 올리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총선을 앞두고 이 대표 ‘사법 리스크’와 결별해야 한다는 판단과, ‘이재명 일극 체제로는 안 된다’는 고려도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 대표 주변의 강성 지지층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고 보는 이들이 이탈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까닭에 비주류 쪽에선 거듭 ‘이 대표가 선제적으로 체포동의안 가결 입장을 밝혀달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이 대표가 20일 ‘부결 호소’로 답하자 불만이 터져나왔다. 아울러 표결 직전 박광온 원내대표를 만난 이 대표가 “통합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당대표·지도부가 노력하겠다”고 말하는 데 그친 것을 두고도 비명계 사이에 ‘충분치 않다’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한다. 한 비명계 의원은 “20일 여러 의원이 뜻을 모아 ‘체포동의안 부결을 약속할 테니 향후 (2선 후퇴 등을) 결단할 수 있다는 약속을 해달라’는 메시지를 이 대표에게 전했지만 의미 없는 답변만 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체포동의안 가결로 민주당은 ‘방탄정당’의 오명은 일부 씻어냈지만 극심한 내홍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본회의 직후 험악한 분위기 속에 심야까지 두 차례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선 고성이 난무하며 감정적인 설전이 이어졌다. 친명계 여러 의원들은 “검찰과 여당의 힘을 빌려서 이재명을 치는 게 정당하냐”며 격분했다. 한 초선의원은 한겨레에 “20%밖에 안 되는 인원(이탈표)이 당을 최대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며 “부결 표를 찍은 136명만 데리고 가자는 당원들의 목소리가 매우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비명계 한 의원은 “지도부와 친명계에 사태 수습의 책임이 있는데 되레 화를 낸다”고 비판했다.
친명계 의원들은 의총에서, 주로 비명계로 꾸려진 ‘박광온 원내대표단’의 사퇴를 촉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박광온 원내대표는 두번째 의총에서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 지도부의 결정과 다른 표결(결과)에 책임을 지겠다”며 사의를 표했고, 의원들은 이를 수용했다. 민주당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새 원내대표를 선출하기로 했다. 친명계인 조정식 사무총장과 정무직 당직자들도 사의를 표명했지만, 이 대표는 이들에 대해 ‘사의 수리 여부를 결정할 때까지 근무하라’고 지시했다고 권칠승 수석대변인이 전했다.
엄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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