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환영 행사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양국 국가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16일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한-일 정상회담은 사실상 일본 쪽 주장만 관철된 일방통행 회담으로 평가된다. 윤 대통령은 “한국의 국익과 일본의 국익이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라며 향후 경제, 안보, 민간 교류 부문의 성과를 부각했으나, 국내 여론 반응에 따라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이날 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양국 정상 간 교차방문(셔틀 외교) 재개 △일본의 반도체 첨단 소재 수출규제 완화 △양국 재계 미래파트너십 기금 창설 △정치·경제·문화 등 각 분야 정부 간 소통 강화에 합의했다. 두 정상은 특히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공동 인식에 바탕한 자유롭고 열린 태평양 국제질서를 언급하며 미국 주도의 대중국 봉쇄 전략에 적극 동참했다.
그러나 최대 관심사였던 한국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제3자 변제 해법에 대한 사죄와 일본 가해 기업의 배상 참여 등 일본 쪽 ‘호응 조치’는 전무했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회견에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를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로 표현하며 직접적인 ‘사과’를 입에 올리지 않았고, 일본 가해 기업의 배상 참여에도 입을 닫았다. 기시다 총리의 “역대 내각의 입장 계승”이라는 표현은 지난 6일 한국 쪽 ‘해법’ 발표 직후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한 발언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조치(한국 쪽 ‘해법’) 실시와 함께 양국 간 정치·경제·문화 분야에서 교류가 힘차게 확대될 것을 기대한다”면서 양국 관계 개선 여부가 한국 쪽의 ‘해법’ 이행에 있다는 것을 부각했다. 아울러 한국 정부의 ‘제3자 변제 해법’에는 “어려운 상황에 있었던 양국 관계를 되돌리기 위한 것”이라며 2018년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확정판결이 양국 관계를 어렵게 만든 원인이라는 인식도 드러냈다.
특히, 두 정상은 일본 가해 기업에 대한 한국 정부의 구상권 청구는 없다고 못박았다. 15일 보도된 일본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제3자 변제안은) 나중에 구상권 행사로 이어지지 않을 만한 해결책”이라고 했던 윤 대통령은 이날 “구상권이 행사된다면 모든 문제를 원위치로 돌려놓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구상권 행사라는 것은 상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대법원이 정부 입장과 다른 판결을 했다며 3권 분립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도 거듭했다. 기시다 총리도 “(한국이 구상권 청구를) 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북핵 위협과 세계적 복합위기 대응을 내세워 ‘강제동원 해법’ 발표를 서둘렀던 윤 대통령은 이날도 ‘국익’이란 추상어를 반복했다. 윤 대통령은 기자가 ‘이번 회담 결과로 얻은 국익이 무엇이냐’고 묻자 “한국 국익은 일본 국익과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 윈윈할 수 있는 국익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해법 발표로 인해서 양국 관계가 정상화되고 발전한다면 양국이 안보위기 문제에 대응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양국 국민 간 문화, 예술, 학술 교류가 왕성해진다면 함께 얻을 이익이 대단히 크다고 생각한다”며 “우리의 국익은 일본 국익과 공동 이익이며 배치되지 않는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사죄와 배상 참여 등 일본 쪽 ‘호응 조치’도 거론하지 않았다. 외려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서는 기시다 총리가 “납치 문제에 대해서는 윤 대통령께서 다시 강한 지지를 해주셨다”고 언급할 정도로 일본의 요구를 들어줬다. 한-일 관계가 과거사와 경제·안보를 맞바꿨던 냉전 시절로 회귀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회담 결과가 실망스럽다고 평가했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한국 쪽의 요구가 거의 수용되지 않았고, 일본 쪽의 주장만 일방통행식으로 반영된 회담 결과”라고 말했다. 이수훈 전 주일대사는 “지난 6일 내놓은 ‘해법’이 참사인데, 그에 기초한 정상회담이니 애시당초 기대할 게 없었다”며 “과거 직시라는 대일외교의 대원칙이 무너져버렸기 때문에 지금 하는 안보협력·경제협력 등도 사상누각”이라고 말했다.
정인환
inhwan@hani.co.kr 신형철 기자
newiron@hani.co.kr 도쿄/배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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