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왼쪽 사진)과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이정아 기자 신소영 기자 leej@hani.co.kr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특별사면 명단엔 국가정보원 정치 개입 사건의 주범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드루킹 사건’으로 유죄가 선고된 김경수 전 경남지사와 함께 ‘민의 왜곡 사범’으로 포함됐다. 국가기관의 조직적인 정치 개입과 정치인 팬클럽의 댓글 조작을 동일선상에 올려놓으며 ‘불공정 사면’을 단행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법무부는 이날 “특정 정당·정파에 유리한 방향으로 민의를 왜곡했던 사안으로 수형 중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잔형을 감형하고, 김경수 전 경남지사에 대해 잔형 집행을 면제한다”고 밝혔다. 신자용 법무부 검찰국장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드루킹 사건은) 대선 과정에서 규모가 큰 조작 사건이었다. 대상자(김 전 지사)의 지위와 역할, 사건이 발생한 시점, 유사한 사건에 대한 사면 사례를 모두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번에는 잔형 집행 면제만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정치 여론 조작 사건’이라는 공통점을 부각하며 김 전 지사 ‘잔형 집행 면제’를 지렛대로 삼아 원 전 원장의 형기를 깎아준 것이다. 원 전 원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 국정원 심리전단을 동원해 야당을 비방하는 댓글을 달며 총선과 대선에 개입했고 △권양숙 여사와 고 박원순 서울시장 미행·감시를 지시했으며 △건설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돼 징역 14년2개월이 확정돼 복역 중이었다. 원 전 원장의 형기는 7년 정도 남았지만 이날 잔여형기의 절반이 감형돼 그는 3년6개월 뒤 출소하게 된다. 반면 김 전 지사는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드루킹’ 김동원씨 일당과 공모해 인터넷 포털 기사의 댓글 순위를 조작한 혐의로 징역 2년형이 확정돼 내년 5월이면 만기를 채우는 상황이었다. 국정원 초유의 선거 개입과 사찰을 주도하고 뇌물 받은 사실까지 드러난 원 전 원장과 비교하면 김 전 지사의 범죄 혐의는 단순하다. 김 전 지사는 ‘들러리’를 거부한다며 ‘사면 불원서’까지 제출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원 전 원장 사면의 지렛대로 활용됐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본인이 거부했는데 김 전 지사를 왜 사면 대상으로 올렸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기계적 균형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전직 국회의원과 광역단체장 등 여야의 주요 정치인 사면 명단을 봐도 정치적 균형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권에선 이 전 대통령을 필두로 박근혜 정부의 핵심이었던 최경환(국정원 특활비 상납), 조윤선(화이트 리스트), 최구식(보좌관 월급 전용), 이완영(불법 기부금 수수), 이병석(일감 몰아주기 3자 뇌물), 김성태(케이티 취업 청탁) 전 의원 등이 사면 혜택을 받았다. 반면 야권 정치인 사면은 김 전 지사 외에 신계륜(입법 로비), 전병헌(이스포츠 관련 뇌물) 전 의원과 강운태 전 광주시장(사전선거운동) 정도에 그쳤다.
야권은 이날 특별사면에 “모욕적이고 뻔뻔하다”는 반응을 내놨다.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김 전 지사와 원 전 원장 동시 사면에 대해 “김 전 지사를 ‘물타기용’으로 사면하면서 국가기관을 조직적으로 동원한 국기문란 사건의 주범과 함께 언급한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김희서 정의당 수석대변인도 “국민통합이 아니라 적폐세력과 반민주세력만을 통합하는 특권사면이고, 국민이 쌓아 올린 민주주의를 모욕하는 사면”이라고 밝혔다.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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