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8·28 전당대회 지역 순회 경선 첫날인 6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서 이재명(왼쪽부터), 박용진, 강훈식 당 대표 후보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라는 요구와 바람이 있었는데 거기에 호응하지 못해 아쉽다. 그런 열망을 담아낼 그릇을 크게 만들어내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의 8·28 전당대회에서 ‘세대교체’를 내걸고 출마해 이재명 대표와 마지막까지 경쟁했던 박용진 의원은 30일 <한겨레>에 이렇게 말했다. 그가 이번 경선에서 얻은 득표율은 22.23%다. ‘반이재명’이라는 깃발까지 내걸고 당내 비이재명계에 온 힘을 다해 호소한 결과치곤 초라하다. 역대 어떤 당내 선거 때보다 특정 후보를 향한 견제가 거셌던 가운데, 역설적으로 이 대표는 가장 높은 득표율로 당선됐다. ‘40대 기수론’을 내걸며 도전했던 ‘97세대’(1990년대에 대학을 다닌 1970년대생)의 도전은 왜 찻잔 속 태풍에 그쳤을까.
전당대회를 전후해 민주당 안에선 97세대들의 도전을 놓고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식의 흔한 위로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재명 대세론이 강력한 가운데서도 경선을 완주한 박 의원을 향해 “할 말은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며 “용기 있다”는 평가가 일부 있지만, 박 의원을 비롯해 본선에서 중도 사퇴한 강훈식 의원, 예비경선에서 탈락한 강병원·박주민 의원 등 97세대 4인방에 대해 ‘아쉽지만 잘했다’는 목소리는 좀처럼 듣기 어려웠다.
대선을 전후해 당 안팎에서 ‘86세대’(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1960년대생)의 2선 후퇴 주장이 불거지는 등 ‘세대교체론’에 대한 갈증이 분출됐지만, 전대에 출마한 40대 재선 의원들이 뚜렷한 가치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며 ‘준비된 후보’라는 확신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선거 패배’를 넘어 이번 전대를 통해 처음 집단적으로 정치 전면에 나선 97세대가 본인들의 정치를 보여주는 데에도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의 한 50대 당직자는 “(민주화운동 세대인) 86세대의 가장 큰 힘은, 20대에 형성한 세대적 가치와 비전이 있었고, 그에 대해 세대 내부는 물론 선후배 세대에게서도 공감을 확보한 것”이라며 “97세대가 선후배 세대는 물론 대중적으로, 또 97세대 내부적으로 얼마나 공감대를 만들었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마지막까지도 반이재명으로 일관하며 가치와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제일 큰 한계”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50대 재선 의원은 “정치지도자가 되려면 자신의 가치와 철학에 동조할 만한 인적 자원을 두루 확보해야 하는데 후보들 모두 그런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며 “본선에 오른 강훈식·박용진 두 후보 모두 장단점이 있는 만큼 결과를 놓고 복기하고 단련해가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특히 대선과 지방선거를 거치는 동안 97세대의 주축인 40대가 민주당의 ‘콘크리트 지지층’임이 거듭 확인됐는데도, 이번 전당대회에 나선 97세대 후보들은 이런 동세대 지지층에 대한 분석이나 소구조차 하지 않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 자신도 97세대인 민주당의 또 다른 당직자는 “세대교체는 ‘나이’의 변화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가치’의 변화를 의미하지만, 출마자들은 거기에 대해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며 “강력한 지지층(40대)이 뭘 원하는가도 들여다보지 않고 ‘기다리면 언젠가 우리 밥때가 온다’고만 생각해온 것 같다”고 말했다. ‘세대교체론’을 앞세웠으나 정작 자기 세대 내에 진지조차 구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박용진 의원 역시 이런 지적을 수긍했다. 그는 “그동안 당내에서 잘못 가는 주류, 지도부를 혼자 비판하는 ‘소신정치’를 해왔으나 이제부턴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책임정치’를 해나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강훈식 의원도 “86세대가 민주화운동의 단일한 경험을 공유한다면 97세대 이후의 진보는 다양한 소수자와 약자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전대 과정에서 이런 문제의식을 정교하게 담아내는 데에 실패했다”며 “앞으로 우리 세대가 이런 다양성을 당의 철학과 정책에 반영하도록 노력해 나가야겠다”고 말했다.
물론 97세대의 실패를 오롯이 그들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당이 그동안 새로운 정치적 리더를 성장시킬 수 있는 토양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청년 정치인을 발굴하려는 시도는 잇따랐지만, 정작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는 분위기가 사라지고 강성 지지층에 휘둘리면서 젊은 정치인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 60대 다선 의원은 “문재인 정부 시기부터 이재명 시대까지, 이견을 내지 못하게 짓누르는 문화가 생겨 새로운 정치가 싹틀 수 없는 악재 요인이 됐다”며 “새 지도부가 당내 다원성을 복원해야 많은 정치적 리더가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 안에선 비록 이번 전대에선 큰 바람을 일으키진 못했어도, 97세대의 도전 자체를 ‘의미 있는 첫걸음’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들이 ‘어대명’(어차피 대표는 이재명)이라는 쉽지 않은 구도 속에도 출마를 감행하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젊은 피 수혈’로 정치권에 입성해 20년 넘게 다양한 정치적 기회를 가졌던 86세대를 대체하겠다는 기치를 들었다는 것이다. 한 30대 초선 의원은 “이번에 97세대가 도전을 하지 않았다면 86세대 선배들이 다음에도 당권 주자로 나섰을 것”이라며 “이번에 당내 리더십의 한 페이지를 넘겼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97세대인 한 재선 의원은 “앞으로 97세대가 86세대와 구분되는 세대적 특징을 어떻게 구체적인 형태로 정치에 구현해내고 대중에게 각인하느냐에 따라 하나의 정치세력, 담론을 가진 세대로서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대를 통해 차기 리더십의 첫 장을 쓴 97세대를 향해 이제부터라도 민주당의 체질 개선과 개혁에 앞장서야 한다는 주문들도 이어졌다. 특히 이재명 대표 체제를 견제하고 보완하는 구실을 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97세대인 한 당직자는 “이들이 ‘처럼회’처럼 당내에서 이념투쟁을 벌이는 집단이 아니라, 민생과 관련한 실질적 고민들에 앞장서고 새로운 세대로서 정치구조 개혁에 앞장선다면 대중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지 않겠냐”며 “기득권을 버리는 데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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