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가운데)이 5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지하에 자리한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열린 국가안보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결과를 보고 받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섞어 쐈던 북한이 이번엔 4개 지역에서 단거리탄도미사일 여러 발을 동시에 발사했다. ‘섞어 쏘기’가 각각 미국 본토 타격과 한반도 전장에 대한 전술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과시한 것이라면, ‘동시 다발 쏘기’는 선제공격에 맞선 2차(보복) 타격 능력이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5일 합동참모본부의 설명을 종합하면, 북한은 이날 오전 9시8분께 부터 약 35분여 동안 평양 순안과 평안남도 개천,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함경남도 함흥 등 4개 지역에서 단거리탄도미사일 8발을 발사했다. 평양과 개천은 내륙이고, 동창리와 함흥은 각각 서해와 동해에 접해 있다. 서해안-내륙-동해안 등 언제, 어디에서든 탄도미사일을 동시 다발적으로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음을 보인 셈이다.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들은 비행거리(약 110km~670km)와 고도(25km~90km), 속도(약 마하 3~6)가 서로 달라, 여러 종류의 탄도 미사일인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지난 2019년 8월과 9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각각 함흥과 개천에서 이른바 ‘북한판 에이태큼스’와 초대형 방사포를 발사한 바 있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북한은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면서 미 본토 타격 능력과 한·일 등 한반도 전장에서 활용 가능한 전술적 능력 확보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며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대미 억제력이라면, 단거리탄도미사일은 대남·대일 억제 수단이다”라고 말했다. 김 부소장은 “어느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동시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어야 ‘생존성’을 확보할 수 있고, 2차 타격이 가능해진다”며 “2차 타격 능력을 보여줄 수 있어야만 상대의 선제 타격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발사 시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북한은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핵’을 확장억제 수단으로 명시하는 등 강경 방침을 명확히 하자, 바이든 대통령이 한-일 순방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지난달 25일 각각 미국과 한·일을 겨냥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과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번엔 한-미가 4년7개월 만에 항공모함을 동원한 연합 해상훈련을 마친 직후, 여러 지역에서 짧은 시간 동안 단거리탄도미사일 여러 발을 발사했다. 북한으로서는 “다양한 형태의 탄도미사일을 연속 발사한 것은 정부 임기 초 안보태세에 대한 시험이자 도전”이라고 반응한 윤석열 정부를 향해 다양한 억제력을 순차적으로 과시하며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갈 것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6월 상순”으로 예고한 노동당 중앙위 8기 5차 전원회의가 다가오면서, 북한이 7차 핵실험까지 나아갈 것이란 우려가 짙어지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북은 추가 핵실험을 통해 한국과 일본을 겨냥한 단거리탄도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소형 핵탄두 개발을 완성하려 한다.
정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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