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박근혜 정부 시절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물대포를 맞아 쓰러진 고 백남기 농민의 수술 과정에 개입한 사실이 확인됐다. 당시 대통령비서실 고용복지수석비서관이었던 김 후보자는 보수청년단체를 동원해 여론조작에 나선 사실도 드러난 바 있어, 자격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9일 경찰청에서 제공받아 공개한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 백서를 보면,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서울대병원에 도착한 2015년 11월14일, 청와대 고용복지수석 보건복지비서관실 소속 ㄱ선임행정관은 ‘상황을 파악하라’는 김 후보자의 지시를 받고 병원장 쪽에 연락했다. 청와대 쪽의 연락에 인근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백선하 교수가 긴급히 병원으로 복귀해 피해자 가족에게 수술을 권하고 이를 집도했다고 진상조사위는 기록했다. ㄱ선임행정관은 백남기 농민의 수술이 이뤄진 뒤에도 서울대병원 비서실장과 3~4차례 전화통화를 하며 백남기 농민의 상태를 파악한 것으로도 나타났다.
백 교수는 나중에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외인사’가 아닌 ‘병사’로 기록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청와대가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은폐하기 위해 전방위로 움직인 과정에 김 후보자 또한 깊이 개입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앞서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도 경찰 정보라인을 통해 백남기 농민과 관련한 정보를 수집하고 이병기 당시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관련 내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진상조사위원회는 백서에서 “수술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보존적 치료만이 예정된 피해자(백남기 농민)에게 갑자기 백선하 교수가 수술을 하게 된 과정에는 의료적 동기 이외에도 경찰과 청와대의 개입이 있었던 것으로 인정될 수 있다”며 “피해자가 즉시 사망하는 것은 경찰과 정권 양측 모두에게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 되었을 것이므로 경찰과 청와대는 피해자가 피해자가 본 사건 이후 바로 사망하는 것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여러 경로로 서울대병원과 접촉하였고 백선하 교수가 의료적 동기와 함께 이러한 과정의 결과로 수술을 집도하게 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히고 있다.
2017년 6월 경찰의 물대포에 맞고 쓰러진 고 백남기 농민 사건 등에 대해 사과하고 있는 이철성 경찰청장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권인숙 의원은 “김 후보자가 고용복지수석으로 노동자 보호에 나서기는커녕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청와대 개입을 주도했다는 사실은 향후 장관이 되었을 때에도 국민이 아니라 정권의 안위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말해주므로 심각하게 우려되는 상황”이라며 “여성가족부 장관은커녕 공직자로서도 자격이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 인사청문회준비단은 이에 대해 입장문을 내어 “당시 고용복지수석으로서 고 백남기 농민의 상황을 알아보라고 했을 뿐 수술 과정에 개입한 사실이 전혀없다”며 “백남기 농민의 사인에 대해 어떠한 의견을 전달하거나 관여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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