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65) 전 감사원장의 좌우명은 ‘의연’이다. 사전적으로는 ‘의지가 굳세어서 끄떡없다’는 뜻이다. 선친이 짓고, 본인이 물려받은 가훈도 ‘의연’이다. 최 전 원장은 매사에 의연함을 잃지 않는다. 31년 판사 생활 동안 법조계에서 ‘원칙과 소신을 중요시하는 보수주의자’라는 평을 받았고, 이런 평가를 발판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감사원장으로 중용됐다. 하지만 ‘의지가 굳세어서 끄떡없음’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다. 자신이 믿는 원칙과 소신에 회의를 품지 않았던 그는 월성원전 1호기 조기폐쇄 타당성 감사를 놓고 정권과 강하게 충돌했고, 결국 감사원장을 박차고 나와 정치권으로 직행했다.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라는 감사원의 헌법적 가치를 훼손했다는 비판에, 그는 “무너져가는 나라를 지켜만 볼 수 없었다”는 말로 답했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확정일까지 두달여 동안 그는 ‘반문재인’을 넘어 어떤 국정운영 철학과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높은 도덕성과 품성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높은 도덕성과 청렴결백한 이미지는 그의 최대 강점이다. 최 전 원장에겐 감동적인 미담이 많다. 고등학교 때 소아마비인 친구(강명훈 변호사)를 업고 2년간 등하교했던 일, 아이 둘을 입양해 정성껏 키운 사연 등은 2017년 12월 감사원장 인사청문회 때도 여야 모두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후보로서, 도덕성에서 다른 대선주자들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강점이 있다”고 말했다.
‘보수의 정통성’을 잇는 가문 배경도 플러스 요인이다. 최 전 원장의 아버지인 최영섭 전 해군 대령은 삼형제가 모두 군인 출신으로, 이른바 ‘병역 명문 가문’이라는 별칭이 붙는 집안이다. 특히 6·25 전쟁 때 대한해협 해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며 ‘전쟁영웅’이라고도 불리는 최 전 대령은 가족들에게도 애국심을 강조했다고 한다.
판사 경력에서도 긍정적 평가가 많다. 그는 1986년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해 각급 부장판사를 거치며 민사·형사·헌법 등 여러 재판업무를 담당했다. 한 원로 변호사는 최 전 원장에 대해 “재판 진행을 할 때 사심이 안 보이고 공정했다”며 “‘학’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최 전 원장과 경기고·서울대 동창인 전직 고위 법관은 “착실한 모범생 스타일이었다”고 평가했다. ‘소신 판결’도 회자된다. 대표적으로는 2011년 서울고법 부장판사 시절 이른바 ‘윤필용 사건’으로 박정희 정권 시절 군 쿠데타 모의 의혹에 연루돼 징역형을 선고받은 전직 장성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군사 정권의 부당한 역사를 바로잡은 판결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11년 12월23일 재일동포 간첩사건 재심에서 주심을 맡았던 최 전 원장은 피고인이 불법 구금과 가혹행위를 당한 끝에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보고 “당시 우리나라가 분단 상황에서 남북이 첨예한 긴장관계를 유지했던 점 등을 고려하더라도, 피고인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법원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머리를 숙였다. 판사가 사법부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한 보기 드문 법정 풍경으로 기억된다.
감사원장 사퇴 뒤 정치권 직행 ‘문제’…국정 전반 지식 부족
빛에는 반드시 그림자가 따른다. 감사원에서도 그는 강단 있는 모습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으나, 감사원장에서 물러난 이후엔 사뭇 평가가 엇갈린다. 문재인 정부와 별 인연이 없는 최 전 원장이 감사원장에 발탁된 데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추천이 있었다는 것이 정설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무색무취한 중립적 인사’가 아니었다. 감사위원 자리에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을 임명하려는 청와대의 요구를 ‘코드 인사’라며 거부했고, 월성원전 1호기 폐쇄 타당성 감사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는 원전 감사 의결 시점을 놓고 감사위원회에서 논쟁을 벌이다 의사봉을 집어던지며 회의장을 박차고 나올 만큼 자신의 생각이 확고했다고 한다. 그의 이런 ‘대쪽’ 같은 태도는 야권의 관심을 모았고, 결국 감사원장에서 물러난 지 17일 만에 뜨거운 환영을 받으면서 국민의힘에 입당하게 된다.
야당 입장에선 대선주자 후보군에 안정감 있는 후보 한명을 추가했지만, 정치 신인 최재형의 인지도는 여전히 낮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문재인 정권과 강하게 충돌하는 모습이 지속적으로 노출된 데 반해, 최 전 원장은 ‘저항의 시간’과 ‘핍박의 강도’가 낮아 야권 지지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 탓이다. 정치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기 전까지는 감사원장 재직 당시 국정감사장에 출석해 얼굴을 보인 정도다. “대중과 잘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성한용 선임기자)는 오랜 정치 경험으로 인지도를 쌓아온 다른 대선주자들보다 불리한 점이다. 최근 최 전 원장의 가족들이 가족 모임에서 애국가를 부르며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사진이 화제가 됐는데, 이는 일반 시민의 삶과 ‘괴리’된 모습이라는 반응을 낳기도 했다. 최 전 원장은 지난 7월7일 국민의힘 입당 직후 일부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0% 언저리까지 갔지만 현재는 4~6% 근처를 오가고 있다.
스스로 인정하는 ‘준비 부족’도 약점이다. 국민의힘 인사들조차 놀라게 할 정도로, 자신이 정한 정치 일정을 속전속결 진행하다 보니 콘텐츠를 쌓을 시간을 갖지 못했다. 같은 당 초선 의원들로부터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 국민들은 궁금하게 생각한다. 외람되지만 참고해달라” “거칠더라도 간단명료하게 메시지가 나와야 한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였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최재형의 가장 큰 약점은 왜 정치를 하는지 분명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모든 야권 대선주자들과 마찬가지로, 높은 정권교체론은 최 전 원장에게도 기회다. 국민의힘 후보 12명 가운데 정권교체론의 즉각적인 수혜자는 반문재인을 선명하게 외친 윤석열 전 총장과 최 전 원장이다. 최 전 원장을 돕고 있는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홍준표·유승민 등 기존 주자를 통해 정권교체를 하려 애썼지만 이미 지난 대선에서 실패하지 않았나. 이번 대선에 정권교체론이 우세해진 데는 윤 전 총장과 최 전 원장의 역할이 크다는 점이 분명하다”며 “막판에는 이들을 통해 정권교체 해야 한다는 기대감이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6월 이른바 ‘엑스(X)파일’ 악재 등 윤 전 총장을 둘러싼 ‘도덕성 리스크’가 최 전 원장의 정치 입문을 부추겼듯, 윤 전 총장에게 또다시 치열한 검증 국면이 찾아온다면 최 전 원장은 다시 한번 지지율 상승의 기회를 엿볼 수 있다. 최 전 원장이 끊임없이 윤 전 총장과 차별화를 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최 전 원장은 윤석열 캠프가 이준석 대표와 갈등을 빚자 “국민과 당원에 의해 선출된 젊은 리더를 정치공학적 구태로 흔드는 꼰대정치, 국민의힘의 변화를 바라는 국민의 열망을 외면하는 자폭정치”라며 이 대표에게 힘을 실었다. 최 전 원장은 지난달 당 대선주자들의 쪽방촌 봉사활동 때 자신의 대선 출마 일정과 겹치자 사전에 이해를 구하고 부인을 ‘파견’해, ‘무단불참’한 윤 전 총장과 대비를 이뤘다. 국민권익위원회의 부동산 전수조사 결과가 나오자 “부동산 투기로 인한 국민적 분노를 감안한다면 대선주자로 나온 분들이 솔선수범해서 국민 앞에 검증받는 것이 좋겠다”고 선제적으로 검증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캠프 인사 5명이 부동산 불법 거래 의혹 명단에 들어간 윤 전 총장과 대조적인 장면이었다.
준비 안된 상황, 보수색채도 강해 중도 확장 어려움
가장 큰 위협 요인은 최재형, 본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 선임기자는 “지금은 대중 앞에 전면적으로 나서기 전이라 일종의 신비감으로 이득을 볼 수 있지만, 경선 토론회가 시작되면 최 전 원장의 역량 부족과 경험 미숙이 드러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은 “최 전 원장은 질문마다 ‘준비가 안 됐다’고 말하는 습관이 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완벽주의’에 해당하는데, 비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모범답안이 아니면 하지 않으려는 것”이라며 “솔직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토론회 같은 공개석상에서도 그런 태도가 계속되면 유권자에게 ‘준비가 안 된 후보’라는 인상이 짙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 전 원장이 점한 정치 이념 좌표에도 물음표가 달린다. 최 전 원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최저임금제 등 대부분 사회경제적 이슈에 대해서 ‘오른쪽’을 점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대선주자 상위 후보군에서 멀어진,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우파 이미지와 겹친다는 지적은 그리 유리해 보이지 않는다. 한귀영 연구위원은 “최 전 원장의 공약이나 입장을 보면 신자유주의에 가깝다”며 “가치관에 입각했다기보다 현 정부에 대한 안티테제로 급조한 것에 가깝다. 합리적 보수를 끌어안기에도 부족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정치인으로서의 비전과 자질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이 그의 가장 큰 과제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국민의힘에는 현 정부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한 윤석열-정통 보수 홍준표-개혁 보수 유승민·원희룡이 있다”며 “이들의 지지율이 다 빠져야 최 전 원장에게 기회가 올 수 있는데 아무래도 훈훈한 미담만으로는 부족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성 선임기자는 “출마 선언을 하고 한달가량 시간이 흘렀음에도 대통령이 되려는 이유가 아직까지 모호하다 보니 지지율 정체도 계속되고 있다”며 “국정 철학을 분명히 보여주지 못하는 현재의 상황이 지속되면 대중들의 마음이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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