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6월23일 제주시 구좌읍 신재생에너지홍보관을 방문한 뒤 원희룡 제주지사(왼쪽) 등과 함께 전동킥보드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리고 있다.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원희룡 전 제주지사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통화 녹취록’ 공방전이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격화하고 있다. 원 전 지사는 ‘공정한 경선 관리 요구’가 목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두 사람 간 갈등이 격한 감정싸움으로 치달으면서 그의 명분도 빛이 바랬다.
18일 원 전 지사는 이 대표가 자신과의 통화 내용 일부를 공개한 것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어 “당 대표의 비상식적이고 위선적인 행태를 타개하지 않고서는 공정한 경선도 정권교체도 불가능할 수 있다는 절박한 판단에 따라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통화 녹음 파일 전체를 저녁 6시까지 공개하라”며 시한을 못 박았다. 공정한 경선 관리 요구를 앞세웠지만, 통화 내용 전체 공개라는 극단적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끝장을 보자는 최후통첩이었다.
이 대표는 원 전 지사의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원 전 지사를 겨냥한 듯 “참 딱합니다”라는 딱 한 줄을 남겼다. 이 대표는 이날 오후 기자들을 만나 “그것(통화 녹음파일 공개 요구)에 대해서는 제가 지금 상황에서는 응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당 안팎에선 지난 6월 말 제주를 찾은 이 대표와 당시 원 지사가 전동킥보드를 함께 타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던 것을 떠올리면 너무나 의외라는 반응이 나온다. 국민의 힘 당 대표실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와 원 전 지사가 특별히 갈등을 빚은 일이 이전에 있던 것도 아닌데 원 전 지사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단은 지지율이 저조한 원 전 지사가 이 대표와의 맞대결 구도를 연출하면서 관심을 끌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한편에선 원 전 지사의 격앙된 행동은 향후 당권을 염두에 둔 포석이 아니냐는 경계의 눈초리도 있다. 원 전 지사가 자신의 ‘쓴소리꾼’ 이미지를 이용해 이 대표 흔들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적인 통화내용 공개로 설령 시비가 가려진다고 해도, 원 전 지사가 얻을 정치적 이득은 별로 크지 않을 듯하다. ‘통화 녹취록 공방’이 막장극처럼 돼 버리자 원 전 지사가 애초 내세웠던 ‘공정한 경선관리’라는 명분도 힘을 잃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 대표가 통화내용 전체를 공개한다고 해서 갈등이 해결되는 된다고 생각하는지, 역으로 원 전 지사에게 묻고 싶다”고 말했다. 김근식 당협위원장(송파병)도 페이스북에 “비공개로 만나서 오해를 풀고 옳은 방향에 대해 서로 논의하고 접점을 찾으면 될 것인데 굳이 언론공개와 기자회견 예고로 일을 키우는 건, 개혁적이고 합리적인 원 지사님 이미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대선 주자인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사적 통화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세계 토픽에 나올 상식 이하의 행동”이라며 “당을 흔들고 당 대표를 공격하는 희한한 정치를 당장 중단하고 대선 후보나 즉각 사퇴하기 바란다”고 비판했다.
원 전 지사 캠프 관계자는 “(당 대표에게) 경선관리까지도 할 생각을 하면 안 된다고 지속적으로 얘기하고 설득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이런 내용의 통화내용을 공개한 것”이라며 “우리의 얘기를 안 들어주니 발언 수위가 높아진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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