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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개혁보수’ 소신 뚜렷한 경제통 유승민…대중성·조직력은 취약

등록 2021-07-30 05:00수정 2021-07-30 08:46

[대선주자 SWOT] 유승민 전 의원

야권 대선 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을 엠제트(MZ) 세대에서 인기 있는 방식으로 분류해보면 ‘정의로운 운동가형’인 ‘엔프제’(ENFJ-A)다. 유 전 의원이 이달 초 직접 ‘간이’ 엠비티아이(Myers-Briggs Type Indicator) 성격유형 검사에 응한 결과다. 이상주의적이고 옳은 일을 위해 쓴소리를 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그의 성격에 대략 부합한다. 하지만 ‘개혁 보수’와 ‘따뜻한 보수’를 기치로 경제 대통령’을 꿈꾸는 그에게 ‘운동가’는 칭찬인 동시에 극복해야 할 지점이기도 하다.

그는 변화의 깃발은 들었으되 현실의 벽 앞에서 주춤거리고 있다. 듣는 이의 마음을 뒤흔드는 언변과 토론 실력, 완성도 높은 국가 비전과 정책 전문성을 갖췄음에도, 야권 지지층의 마음을 한데 모아낼 정치적 역량을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 전 의원은 두번째 도전하는 이번 대선을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과연 그는 앞으로 남은 8개월 동안 취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부각해 반전의 드라마를 쓸 수 있을까.

정책 준비되고 언변 뛰어난 이론가

유 전 의원은 소신과 신념이 강한 정치인이다. 경제학자로서나 정치인으로서 소신을 굽히지 않다 화를 입은 일도 많다. 가장 유명한 일화는 여당 원내대표를 맡았던 2015년, 공무원연금개혁 협상 과정에서 정부 시행령이 상위 법률안 취지에 어긋나는 경우 국회가 수정·변경을 요구하면 정부가 이를 따르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가 당시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라는 낙인이 찍힌 일이다. 대통령의 공개적 사퇴 압박에도 무려 13일을 버티다 쫓겨났다. 그는 자신의 저서인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에서 “당장에라도 사퇴하는 게 오히려 쉬운 일이었다.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건 개인 유승민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국민과 역사 앞에서 떳떳한 선택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만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의 강한 소신은 박정희 정권에 불리한 판결을 내렸다는 이유로 법복을 벗은 판사 출신 정치인 아버지(유수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개혁 보수라는 정치적 소신이 누구보다도 명확한 주자다. 특히 그 좌표가 혁신과 중도, 합리를 표방한다는 점에서 중도 확장성이 가장 높아 야권에서 가장 경쟁력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번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 경선 과정에서 ‘가장 껄끄러운 야당 상대 후보’를 묻는 말에 후보 9명 중 4명이 유 전 의원을 꼽기도 했다. 경제 분야에서 독보적 위치에 있는 유 전 의원과 정책 대결을 벌이는 게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는 “원내대표 시절 ‘중부담 중복지’를 제시하는 등 대선 주자로서의 비전을 분야별로 완성된 형태로 갖추고 있는 거의 유일한 후보”라며 “특히 경제 분야에서 탄탄한 이론과 입법 경험을 겸비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그는 ‘언변능숙형’답게 자신의 정치적 비전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탁월하다는 평가도 받는다. 유 전 의원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입성한 직후부터 유시민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과 경제 토론을 벌이며 단연 화제에 올랐다. 당시 <문화방송> 100분 토론은 누적 조회수 120만회를 넘어서며 아직도 회자하고 있다. 2015년 4월 ‘증세 없는 복지의 허구성’을 비판한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은 야당으로부터 “보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 명연설”이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소신 탓 박근혜정권 땐 ‘배신자’ 낙인…‘정치인 유승민’ 알리는 데 무뎌

강한 소신은 견제를 자초한다. 한국개발연구원에 근무하던 1998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방한해 원탁토론이 열렸는데 유 전 의원이 클린턴 면전에서 미국 주도의 국제금융기구(IMF) 운영을 비판했다. 이처럼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드는 일이 거듭되면서 성과급 1등이었던 유 전 의원은 본봉이 반토막 나는 징계를 받았다.

이런 반골 기질은 세 확장을 어렵게 만든다. 대선 주자로서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하는 이유다. 정치 경력만 20년이 넘는 그는 4년 전 대선에 한 차례 출마했던 것에 비춰보면 조직 기반이 그리 강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유 전 의원 쪽은 “규모의 경제는 약할지 몰라도 조직의 결속력은 그 어느 캠프보다 강하다”고 항변한다.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은 “속된 말로 ‘개기는 데’ 일가견이 있는 유 전 의원은 많은 사람을 넓게 품고 이끌고 나가야 하는 지도자로서는 취약한 측면이 있다”며 “대선 주자에게는 거대 조직을 이끌어나가는 포용적 리더십이 필수적인데 이 점이 부족하다 보니 정치적 세력을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바른정당에서 유 전 의원과 정치 행보를 같이했던 김영우 전 의원과 조해진 의원은 최근 최재형 전 감사원장 지지를 선언했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 상근 정무특보로 자리를 옮긴 이학재 전 의원 역시 유승민계로 분류됐던 인사다.

정책으로 경쟁한다는 ‘강한 소신’ 탓인지 ‘정치인 유승민’을 알리는 일엔 무딘 편이다. 최근 잠행과 칩거를 반복해왔던 그는 대선 예비후보 등록 이후에도 페이스북 외에는 여전히 공개 활동이 활발하지 않다. 대중적인 관심을 얻지 못할 게 뻔한데도, ‘국민연금 개혁’ 등 페이스북을 통한 정책 공약 발표에만 주력하고 있다. 정책 연구에만 힘을 쏟는 ‘학자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금수저 집안에서 자란 경제 엘리트라는 점 등도 그에겐 그다지 유리한 조건이 아니다. 캠프 관계자는 “정치인보다 학자에 더 가까워 보인다는 평가는 대선 주자로서 가장 뼈아픈 대목”이라며 “정책으로 승부하되, 방송이나 토론 등의 기회를 통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2%대 낮은 지지율이 최대 과제

가장 큰 위협 요인은 2%대의 저조한 지지율이다. 범보수권 주자들만 따로 조사했을 때는 지지율이 10%를 돌파했다는 결과도 나오지만, 판을 흔들기엔 역부족이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높은 인지도에 견주면 현저히 지지율이 낮다. 정치인으로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경북(TK) 지역을 비롯해 전통적인 보수층에 각인된 ‘탄핵 배신자’ 이미지도 벗어나야 할 굴레다. 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당내 세력 구축에도 한계가 있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혁신적인 보수를 내세워 공략한 새로운 지지층을 디딤돌 삼아 전통 보수의 반감을 되돌려야 하는데 이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정치적 매력이나 맷집 등이 약하다”고 평가했다.

정치 공학적으로 합리적 보수가 빛을 발하기 어려운 시기라는 분석도 있다. 한 연구위원은 “합리적 보수가 빛을 발하는 시기는 보수정당이 힘은 강력하나 기득권화되며 비판을 받을 때인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실제로 한국 정치사에서 합리적 보수가 독자적 영역을 구축한 적도 거의 없었다”고 짚었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와 윤희숙 의원이 등판하며 유 전 의원이 독점해온 ‘유일한 경제전문가’ 위상이 허물어지는 것도 위기 요소다. 정부 목표대로 코로나19 집단면역이 형성돼 경제 성적표가 좋게 나온다면 현 정권의 경제 실정을 주로 겨냥해온 유 전 의원의 공세도 관심을 끌기 힘들어진다.

혁신·중도 확장성 높아…본선 토론 거치며 부각될 가능성

유승민 캠프는 야권 대선 경선이 본격 시작되면 토론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본선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 등 신진 주자들에게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정책적인 비전이 준비되지 않은 채 ‘반문 전선’을 강조하는 윤 전 총장, 최 전 감사원장과 확실한 차별화를 보일 수 있다고 자신한다. 특히 야권 1위 주자인 윤석열 전 총장의 ‘보수 행보’가 유 전 의원의 개혁 보수 가치를 재평가하게 만드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변이 바이러스의 급속한 확산 등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경제 중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는 여건도 유 전 의원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윤태곤 실장은 “코로나로 인해 경제 문제 해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전문성 있는 인물을 요구한다면 유 전 의원은 역전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짚었다.

유승민계로 분류되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등장은 ‘계주’인 그에게 기회인 동시에 위협 요인이다. 대선을 앞두고 확고한 당내 우군 세력을 확보했다는 점에서는 반갑지만, 그만큼 경쟁 후보들의 견제도 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 당선이 담고 있는 ‘세대교체 열망’ 역시 유 전 의원에겐 양날의 칼이다. 그는 60대지만 젊은층에 소구력이 높다는 강점이 있다. 지난 대선 당시 그의 지지층 평균 연령은 42.9세로, 당시 경쟁자였던 홍준표(60.3세) 의원과 안철수(52.3세) 국민의당 대표보다 매우 낮았다. 하지만 ‘혁신 보수’의 깃발을 당내 젊은 세대인 이 대표가 가져가면서 ‘개혁 보수’를 선점했던 유 전 의원의 존재감이 오히려 약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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