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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정당

이낙연, ‘엄·근·진’ 별명처럼 합리적 ‘소통의 정치’…결단력은 부족

등록 2021-06-25 04:59수정 2021-06-25 10:00

대선주자 SWOT 분석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강창광 선임기자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강창광 선임기자

‘정치인 이낙연’의 강점과 약점은 ‘양날의 칼’이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엄·근·진’(엄중·근엄·진지)이라는 별명처럼 신중하고, 합리적이며, 균형 잡힌 태도로 ‘최장수 국무총리’의 소임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높은 지지율을 기반으로 ‘꽃길’만 걸을 줄 알았던 이 전 대표가 본격적으로 대선 행보를 내딛자 장점이 단점으로 작용하며 발목을 잡았다. 특유의 균형감각은 신속한 결단에 방해가 됐고, ‘관리자형 리더십’은 4월 재보궐선거를 앞둔 각종 악재를 수습·방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앞으로 9개월. 과연 취약 지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부각해 판을 흔들 수 있을까. 그에겐 어떤 기회와 위협이 기다리고 있을까.

권범철 화백
권범철 화백

기자 출신 뛰어난 말·글솜씨…행정도 꼼꼼

기자 출신인 이낙연 전 대표의 강점 중 하나는 말솜씨, 글솜씨다. 국무총리 시절에도 연설 담당 참모가 써 온 글을 항상 자신의 언어로 세심하게 다듬었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정치인이 말과 글을 통해 시민들과 소통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주 큰 강점이 아닐 수 없다.

이 전 대표가 유력한 대선주자로 떠오르게 된 것도 그의 ‘언변’이 큰 몫을 했다는 데 대부분의 전문가가 공감을 나타냈다. 총리 재임 시절 대정부질문 등에서 야당 의원의 공세에 촌철살인 한마디로 말문을 막히게 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예컨대 총리 취임 초기인 2017년 9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일본 보도를 언급하며 “오죽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총리와 통화하면서 한국이 대북 대화 구걸하는 거지 같다’는 그런 기사가 나왔겠냐”고 쏘아붙이자 이낙연 총리는 특유의 저음으로 “김성태 의원이 한국 대통령보다 일본 총리를 더 신뢰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는 말로 제압했다. ‘사이다 총리’ 이미지를 구축하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이 전 대표에 대해 “언어가 정확하고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다”며 “대변인, 국무총리로서는 큰 강점”이라고 평가했다.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도 그가 “기자 출신으로서 갖는 강점이 있다”며 “폭넓은 상식을 갖췄고 균형감각이 뛰어나서 디테일에 강하다. 글을 잘 쓰고 말을 잘한다”고 분석했다. 실제 이 전 대표는 초선 의원 시절부터 시작해 대변인을 5차례나 맡았고, 2002년에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대변인을 지냈다. 다만, 매사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는 장점이 되레 약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귀영 연구위원은 이 전 대표가 논란을 일으키는 튀는 발언을 하지도 않지만 “언어의 온도가 미지근하다”고 했다. “메시지의 전달력은 출중하나 메시지를 뒷받침하는 의제, 좌표 등이 모호”할 경우 사람들을 사로잡기 또한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전 대표는 ‘디테일’에도 강하다. 매사에 꼼꼼한 성격으로 세부적인 현안을 두루 살펴 실무를 보는 참모들이 긴장하기 일쑤였다. 강원도 고성, 삼척 등 산불과 태풍 등 재해가 발생한 민생 현장에 여러차례 방문한 이 전 대표가 직접 수첩과 펜을 들고 다니며 피해 상황을 살피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되면서 ‘민생 총리’란 별명도 얻었다.

사면론 불쑥 꺼냈다가 역풍…조직부재·엘리트 의식도 약점

이 전 대표는 올해 1월1일 ‘이명박·박근혜 사면론’을 제기했다가 ‘역대급 위기’를 맞았다. 한때 20% 후반을 찍었던 이 전 대표의 지지율은 사면 발언 뒤 급락했고 4·7 재보궐선거 참패라는 악재가 겹쳐 한자릿수로 내려앉기도 했다. 이 전 대표는 결국 사면 발언 다섯달 만인 5월에 광주광역시를 찾아 “국민의 뜻과 촛불의 정신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다. 그 잘못을 사과드린다”고 머리를 숙였다. 최근 펴낸 책 <이낙연의 약속>에서는 “대통령의 고뇌를 제대로 덜어드리지 못하고 나온 것이 한스러웠다. 정치적 타격을 감수하고서라도 갈등과 분열, 충돌을 풀어가는 상징적인 출발점이라도 열어야” 했다면서도 “거론의 시기와 방법은 좋지 않았다”(190쪽)고 재차 사과했다.

전문가들은 이 전 대표가 총리직에서 내려와 ‘대선주자 이낙연’으로서 시험대에 오르면서 여러 약점이 드러났다고 입을 모은다. ‘1년짜리 당대표’를 지내면서 정치 지도자로서 결단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 이 전 대표의 지지율은 2020년 하반기 당대표에 당선된 뒤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였다. 이 전 대표를 오래 지켜본 한 인사는 “이 전 대표는 안정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강점을 바탕으로 탁월한 행정력을 발휘했고 민심을 잘 읽어 다수가 납득할 만한 결정을 이끌어내는 장점이 있다”며 “하지만 당대표 시절 이런 모습을 제대로 보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조직의 부재’도 큰 약점이다. 성한용 선임기자는 “대통령을 하려면 동지가 있어야 한다”며 “이 전 대표는 국회의원을 할 때도 의원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지금 이낙연 후보를 돕는 정치인들 중에서 진짜 이낙연 후보의 동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진단했다. 예컨대 김영삼 전 대통령한테는 최형우·김덕룡·서석재·김동영·강삼재 등이, 김대중 전 대통령한테는 권노갑·한화갑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는 안희정·이광재·이기명·강금원·염동연이,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한테는 양정철·노영민·정동채가 있었다면, 이 전 대표에겐 ‘수족’이라고 할 만한 이들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 한 측근은 “자신과 뜻을 같이하고 그의 소신을 잘 알고 지켜주려는 그룹을 만들어야 했는데 이를 (당대표 임기 중) 단기간에 채우려다 보니 삐걱댄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남북 평화와 통일, 중산층·서민이 잘 사는 나라 등 비전을 내세운 김대중, 낡은 정치 청산, 지역주의 해체를 제시한 노무현, 탄핵 뒤 적폐청산, 재조산하(나라를 다시 만든다)란 비전을 앞세운 문재인 등과 비교할 때 이 전 대표의 비전은 뚜렷하지 않다. 그는 최근 신복지·신경제를 축으로 하는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지만 소구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전 대표는 전남지사 시절 ‘나는 전남지사 두번 정도로 정치 인생을 정리하려고 한다’고 말한 일이 있는데, 철학과 가치, 비전과 세계관은 뒤늦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전 대표의 엘리트적 이미지가 실점 요소라는 분석도 있다. 이 전 대표 자신은 “누추”, “남루”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추억하지만 유년기 이후엔 탄탄대로였다.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동아일보> 기자를 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고향에서 4차례 당선, 도지사를 지내고 총리를 맡은 뒤 대선후보 자리에 오른 것이다.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은 “권위에 맞서 싸우며 올라온 사람이 아니라 김대중이라는 정치 거물에 의해 발탁, 곧 ‘권위’에 의거해 올라온 정치인”이라고 말했다.

안정·합리적 이미지…네거티브 국면 ‘반사이익’ 가능성

1인자의 실수가 2인자한테는 기회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거침없는 발언을 이어가다 실수를 하거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정치 아마추어’ 같은 모습을 노출하면 경험 많고 안정적인 이미지의 이 전 대표가 득점할 수 있다는 얘기다. 윤태곤 의제와 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도 “이들 후보가 실수나 불안정성을 노출할수록 이낙연 전 대표가 주목받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낙연은 상대적으로 이들보다는 검증이 많이 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캠프 관계자들의 의견도 비슷했다. 한 관계자는 “네거티브 국면이 시작되면 이 전 대표의 신중한 대응이 국민 눈살을 덜 찌푸려지게 할 것이다. 윤석열의 대선 출마와 본격 행보가 시작되면 야권 후보를 상대로 싸우는 과정에 반등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또 다른 캠프 관계자도 “향후 후보들끼리 각을 세우고 대응하는 과정에서 이낙연의 진가가 발휘될 것”이라고 했다. 여권 대선후보들 가운데서 이 전 대표가 상대적으로 중도적 이미지가 강한 것도 향후 외연확장의 발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 다른 캠프 핵심 관계자는 “사면 발언 뒤 하락하던 지지율이 최근 반등해서 희망적”이라며 “6월 말까지 17% 지지율이 나오면 역전이 가능하다고 기대한다. 결선투표까지 가면 승산이 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초대 총리 출신으로 이 전 대표의 지지율이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과 연동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을 고려할 때 현 정부에 대한 지지가 오른다면 이 전 대표의 지지도 함께 오를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다.

2인자 한계 딛고 ‘전략적 선택’ 받아야

이 전 대표는 이재명 경기지사 다음으로 유력한 여권 대선주자이지만 ‘2인자’ 이미지로만 일관하는 것 역시 곤란하다. 윤태곤 실장은 “안정적인 2위의 이미지가 너무 오래 유지되는 것이 가장 큰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에 존재하는 ‘반이재명’ 정서가 확산하면 이 전 대표한테 기회가 오지 않겠냐는 전망도 나오지만 호락호락하지 않다. 윤 실장은 “여권 지지층 중에 이재명 지사를 싫어하는 이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지층이 더 많아 보인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대선후보 목록의 객관식 답안 중 하나로 이낙연을 넣어두는 것이다. 오히려 박용진 의원이 치고 올라온다면 이재명이 아니라 이낙연 지지율이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당원 기반을 보면 이 전 대표는 전남 지지층이 특히 두텁다. 하지만 호남 유권자들의 ‘전략적 선택’, 곧 ‘이길 수 있는 민주당 후보’로의 몰표는 핵심적인 위협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이재명만이 윤석열 잡는다’는 인식이 번지면 이 전 대표에게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이 전 대표 자신의 독자적 지지층을 확보하지 않는 한 ‘반이재명’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셈이다. ‘이준석 돌풍’으로 대표되는 세대교체 흐름도 올해 69살인 이 전 대표에게 그다지 유리하진 않다. 그의 강점인 ‘경륜’이 세대론에 묻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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