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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전태일 50주기, 더 절실해진 ‘다른 나’와의 연대

등록 2020-11-12 20:12수정 2020-11-13 02:42

참혹한 노동인권 실상 일깨운 ‘불꽃’
개선 있었지만 갈 길 먼 노동존중사회
‘전태일 정신’으로 노동양극화 해소를
1970년 11월 전태일 열사 장례식에서 아들의 영정을 껴안고 오열하는 어머니 이소선 여사.
1970년 11월 전태일 열사 장례식에서 아들의 영정을 껴안고 오열하는 어머니 이소선 여사.

전태일 열사 50주기다. 1970년 11월13일 스물두살 재단노동자가 근로기준법 책자를 가슴에 품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산화한 지 반세기가 지났다. 그의 희생은 양심적 청년과 지식인들에게조차 관심 밖이었던 참혹한 노동인권의 실상에 철퇴를 내린 듯했고, 이후 불꽃처럼 일어난 한국 노동운동의 신호탄이 됐다. 그가 없었다면 노동자들의 현실 또한 크게 나아지지 못했을 것이다.

몸을 바로 세울 수도 없는 다락에서 햇빛 한줌 보지 못하고 풀빵으로 끼니를 때우며 하루 16시간 재봉틀을 돌리다 쓰러지던 10대 ‘시다’들은 지금 칠순이 눈앞이다. 그사이 노동인권은 더디지만 앞으로 나아갔다. 법정 노동시간은 주 40시간이 기본이 됐으며, 일과 가정의 양립은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았다. 근로감독도 그때와 비교하면 엄격해졌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전 조항 비준도 머지않았다.

그러나 50년 전을 기억하는 늙은 노동자의 눈에 비친 오늘의 노동 현실은 낯설면서도 또한 낯익다. 한국은 여전히 해마다 2000명 넘는 노동자가 일 때문에 숨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의 산업재해 국가다. 코로나19 유행으로 비대면 플랫폼 산업은 돈방석 위에 올라앉았지만, 비대면과 비대면 사이를 메우는 노동자들은 택배 상자를 나르다 쓰러져 끝내 눈을 감거나 짧은 토막잠을 자다 영영 눈을 뜨지 못한다. 세상은 그들을 ‘필수노동자’라 부르면서도 그들의 생존에 필수인 임금과 휴식 제공은 외면한다.

50년 전 ‘산업역군’으로 불렸던 노동자들은 이제 ‘사장님’으로 불린다. 실상은 노동자로도 인정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산업역군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싸웠으나, 사장님은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라고 싸운다. 고삐 풀린 외주화와 급변하는 기술 등으로 노동자라는 이름 앞에 하청, 특수고용, 플랫폼 같은 수많은 수사가 붙었다. 수사가 늘수록 ‘진짜 사장님’ 모습은 ‘바지사장’ 뒤로 가려지고, 인공지능(AI)의 부당한 ‘업무 지시’에 배달노동자는 항의할 곳조차 없다. 사각지대는 무섭게 확대되고, 산재도 여기에 집중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노동계 인사 최초로 전태일 열사에게 ‘무궁화 훈장’을 추서했다. 그러나 노동자 권리와 안전을 강화하는 실질적인 조처가 있어야 훈장도 빛을 발할 것이다. 이날 내놓은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은 강제성 없는 권고 규정이 태반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줄곧 외면하다 국민의힘마저 제정 의지를 나타내자 부랴부랴 뒤쫓는 모습을 보인 것도 안타깝다. 압도적으로 기운 운동장을 바로 세우려는 큰 그림과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노동 양극화’는 오늘날 노동 문제의 핵심 가운데 하나다. 대기업 중심의 기존 노동계가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고 보기 어렵다. ‘전태일 정신’은 버스비를 털어 어린 시다들을 먹였던 일화를 빼고 온전히 말할 수 없다. 50년 전 그가 말한 ‘나’와 ‘다른 나’의 연대가 다시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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