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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영욕의 삶 마친 이건희 회장, 삼성에 남겨진 과제

등록 2020-10-25 18:28수정 2020-10-26 23:03

‘반도체 신화’로 삼성 키우고 국가경제 기여
정경유착·불법승계·무노조 등 짙은 그림자도
성과 계승·확장하고 부정적 유산은 청산하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별세한 25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이건희 회장 별세와 관련한 뉴스 속보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별세한 25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이건희 회장 별세와 관련한 뉴스 속보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별세했다.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쓰러져 의식을 잃은 채 지난 6년5개월 동안 입원 치료를 받아오다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 회장은 말 그대로 영욕이 극명하게 교차하는 삶을 살았다. 반도체와 휴대전화 분야에서 선구적 투자·개발로 삼성을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키우고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정경유착, 불법 경영권 승계, 무노조 경영 등으로 우리 사회에 짙은 그림자를 남겼다. 이 회장의 별세가 한 재벌 총수가 생을 마감한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이유다.

이 회장은 1987년 그룹 회장 자리에 올라 삼성이 한국 대표 기업을 넘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이끌었다. 인터브랜드의 2020년 조사에서, 삼성전자 브랜드 가치는 623억달러(약 71조원)로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에 이어 세계 5위를 차지했다. 취임 당시 “삼성을 세계적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한 약속을 지킨 셈이다.

이 회장이 이뤄낸 경영 성과 배경을 얘기할 때 첫손에 꼽히는 것이 1993년 ‘신경영 선언’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핵심 경영진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양 위주에서 질 위주의 ‘품질 경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문한 게 이때였다. 당시 선언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는 말로 널리 회자됐다. 품질경영이 강조되면서 삼성 제품의 경쟁력은 눈부신 도약을 이뤄냈다. 물론 지금의 삼성은 임직원들의 헌신과 국민적 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이 회장의 결단과 혁신이 없었다면 또한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성과의 이면에는 숱한 탈법·편법이라는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 무엇보다 부친인 이병철 창업주 이래로 검은돈을 고리로 한 정경유착을 이어온 것은 씻을 수 없는 오점이다. 또 ‘삼성 공화국’이라는 말이 보여주듯, 돈을 앞세워 법조계, 언론계, 학계 등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우리 사회 곳곳을 병들게 했다. ‘삼성 장학생’이란 치욕적인 조어는 그 상징이다. 노동조합 설립을 방해하고 탄압해온 ‘무노조 경영’은 노동자들에게 깊은 상처와 큰 고통을 안겼다.

불법·편법 경영권 승계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이 회장 본인이 공익법인을 통해 변칙 증여를 받았고,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세 자녀도 세금 없는 대물림을 이어가며 숱한 물의를 일으켰고 지탄을 받았다. 한국의 대표 기업으로 재계 전반의 본보기가 되기는커녕 나쁜 선례가 된 셈이다.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삼성은 이 회장이 이뤄낸 성과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동시에 어두운 유산을 청산해야 하는 숙제를 떠안게 됐다. 국내외 경제 환경이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데다, 이 부회장이 불법 경영권 승계와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뇌물 공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결코 녹록지 않은 과제다. 그럼에도 이 부회장과 임직원들이 앞으로는 준법경영과 책임경영을 다하며 삼성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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