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23일 밤 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 대표자 회의’의 합의안이 부결된 뒤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 회의’ 합의안이 23일 진행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투표에서 과반 찬성이 나오지 않아 부결됐다. 김명환 위원장은 지난 1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반대파에 의해 합의안 승인 절차가 막히자 위원장직까지 걸고 이를 다시 대의원대회에 부쳤으나, 끝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민주노총은 위원장을 비롯한 집행부가 사퇴하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한다. 그러나 사회적 불신과 고립을 헤쳐나가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노사정 대표자 회의는 사회적 대화에 부정적이던 민주노총이 먼저 제안해 구성된 터여서 큰 기대를 모았다. 코로나19로 노사 모두 전례 없는 위기를 절감하는 상황에서, 3자가 머리를 맞대고 이해를 절충해 합의안을 내는 데도 성공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민주노총은 스스로 제안한 합의기구뿐 아니라, 합의 내용마저 일방적으로 깨뜨린 꼴이 됐다. 다리를 끊고 고립을 선택한 셈이다. 앞으로 정부나 재계는 물론 양대 노총의 다른 한쪽인 한국노총마저 민주노총과 대화에 나서려고 할지 의문이다.
합의안 부결에 앞장선 강경파는 노사정 대표자 회의 전으로 돌아갔으니 달라진 게 없다고 보는 모양이다. 하지만 코로나 위기로 우리 사회는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적 변화가 구경만 하는 자신들의 기대대로 흘러갈 거라고 본다면 큰 오산이다. 합의안이 추상적이라는 이유로 비토해놓고, 이를 구체화하지도 않은 채 전국민 고용보험 연내 입법이나 상병수당 도입 등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민주노총은 오로지 자기 실력만으로 거대한 변화의 파도와 맞서지 않으면 안 되는 선택을 했다. 형편이 나은 몇몇 대형 사업장이야 사용자 쪽과 일대일로 맞서볼 수 있다 해도, 전국의 작은 사업장들에서 동시다발로 터질지 모를 고용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지 걱정이다. 100만 조합원에게 구체적인 대안을 내놔야 할 것이다. 제1 노총의 위상에 걸맞게 사회적 책무를 다하려면 전체 노동자의 90%에 이르는 미조직 노동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전략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비록 합의안은 부결됐지만,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합의를 해본 경험은 귀하다. 민주노총은 그 경험을 우리 사회의 책임 있는 한 주체로 다시 서기 위한 토대로 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