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3일 국회에서 자신의 사립유치원 회계비리 폭로로 입법 논의가 시작돼 패스트랙에 오른 `유치원 3법'이 교육위, 법사위에 계류된 270일 동안 한 차례 심사도 없이 본회의에 회부되는 것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 의원은 패스트트랙의 ‘숙려제도’가 입법 지연에 악용되는 현실을 비판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사립학교법, 유아교육법, 학교급식법 개정안 등 ‘유치원 3법’이 270일의 교육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계류 기간 동안 단 한차례 논의도 없이 24일 국회 본회의로 넘어간다. 법안 처리를 무작정 가로막는 것을 방지하되 깊이 있는 추가 논의를 위해 마련한 소관 상임위 180일, 법사위 90일의 ‘숙려 기간’ 동안 여야가 법안 심사 노력 없이 시간만 허비한 탓이다. 국회의 명백한 직무유기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유치원 3법’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폭로로 그 실체가 드러난 사립유치원 회계 비리를 바로잡기 위해 입법 논의를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교비 회계 일원화 여부 등 구체적 내용을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지난해 12월27일 자유한국당이 퇴장한 가운데 바른미래당 안을 중재안으로 해서 신속처리안건에 올랐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의 반발로 교육위는 180일의 계류 기간 동안 단 한차례도 법안을 심사하지 않았다. 6월25일 법사위로 법안이 자동 회부됐지만, 법사위도 기본 소임인 자구 심사조차 포기한 채 23일로 90일의 계류 기간을 다 채웠다. ‘유치원 3법’이 24일 국회 본회의로 부의되면, 60일 안에 상정돼 표결해야 한다.
패스트트랙에 오른 법안을 최장 270일간 상임위에 계류한 뒤 본회의에 부의하도록 한 것은, 이견을 가진 정당들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 끝까지 최선의 법안을 만들려는 노력을 다하라는 뜻이다. 본회의 60일까지 포함해 최장 330일간 법안 처리를 미뤄서 ‘슬로트랙’이라는 비판이 있음에도 이 제도를 도입한 것은 국회의원들의 최소한의 양식을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첫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오른 ‘사회적 참사법’에 이어 두번째 안건인 ‘유치원 3법’마저 숙려 기간을 그냥 흘려보내면서, 패스트트랙 숙려 기간이 되레 시간끌기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지난 4월 패스트트랙에 올린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및 검경수사권 조정법안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국민으로부터 입법권을 위임받은 국회의 기본 책무는 법안 심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법안 지연 수단으로 숙려 기간을 악용하는 건 국민적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여야 모두 엄중하게 인식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