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7월1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에이티(AT)센터에서 열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임시 주주총회에서 최치훈 삼성물산 건설부문 대표이사가 합병안을 통과시키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한겨레> 취재 결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 검토 보고서가 삼성 쪽의 요구로 조작됐다고 담당 회계사들이 검찰 조사에서 진술했다고 한다. 2015년 두 회사의 합병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뤄졌다는 정황은 이미 여럿 나왔지만, 객관적 기준에 따라 작성됐어야 할 합병비율(1 대 0.35) 보고서마저 삼성의 요구에 못 이겨 억지로 짜 맞춘 결과라고 하니 작지 않은 충격이고 탄식을 금할 수 없다.
회계 일감을 주고받는 구조에서 ‘을’의 처지인 회계법인이 기업 쪽의 요구에 취약한 현실을 고려하더라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에 얽힌 일 처리 과정에서 담당 회계법인 딜로이트안진의 일탈은 지나쳤다. 이전 보도에서 이미 드러났듯 안진은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가치를 구체적 근거 없이 증권사들 보고서를 인용해 4조2천억~7조원으로 매기고,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숨긴 조 단위의 부채(콜옵션)를 기업가치 평가 때 반영하지 않았다. 모두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합병 작업과 긴밀히 얽힌 사안이다. 시장경제의 기초를 허무는 것이며, 전문가 집단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기에 더해 합병비율 보고서를 삼성 쪽의 요구에 맞춰 작성했다는 회계사들의 진술은 그 결정판이다. 안진 소속 회계사들은 “(미리 제시된) 합병비율에 맞추기 위해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삼성 쪽과 지속적으로 협의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회사의 사업 내용과 자산·부채를 따져 정해야 할 기업가치 평가의 당연한 순서를 거스른 정반대 경로에 아연할 따름이다. 일탈의 유혹을 떨치지 못한 전문가 집단이나, 그 일탈을 강요한 기업 모두 응분의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
삼성 요구에 따라 작성된 회계사들의 엉터리 보고서는 합병비율을 정당화해주는 근거로 여겨져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으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국민의 노후자금 원천에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는 점을 다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합병 이전 제일모직 최대주주(23.2%)였던 이재용 부회장은 2조~3조6천억원의 이득을, 삼성물산 지분 11.21%를 갖고 있던 국민연금은 3300억~6천억원가량 손해를 본 것으로 참여연대는 추산했다. 기업과 전문가 집단의 일탈로 빚어진 엄청난 결과다. 엎질러진 물이라고만 여길 일이 아니며, 사후적으로라도 바로잡아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