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오염물질 측정업체와 짜고 미세먼지 원인물질 수치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난 엘지(LG)화학 여수공장 전경. 엘지화학은 17일 곧바로 공식 사과하고 관련 시설을 폐쇄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환경부가 미세먼지 원인물질인 먼지, 황산화물, 질소산화물의 배출 수치를 조작한 측정 대행업체 4곳과 측정 의뢰 사업장 235곳을 적발했다고 17일 밝혔다. 이들 업체는 서로 짜고 측정값을 축소 조작하거나, 심지어 측정하지도 않고 배출 기준을 맞춘 듯 꾸민 것으로 드러났다. 대기오염 물질을 불법 배출한 것이며, 미세먼지를 줄이려는 정부 정책의 근간을 뒤흔든 일이다.
문제의 기업 중 엘지(LG)화학 여수화치공장, 한화케미칼 여수 1·2·3공장 등 6곳과 지구환경공사를 비롯한 측정 대행업체 4곳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재벌기업이 사회적 책임은 고사하고 기본 법규조차 헌신짝처럼 버렸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며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대기오염물질 배출 대기업 직원과 측정대행업체 직원이 측정값 조작을 공모한 에스엔에스(SNS) 대화 내용. 환경부 제공
불법 조작의 규모와 내용도 놀랍다. 이들 측정업체가 2015년부터 4년간 측정 기록을 조작하거나 허위로 발급한 게 총 1만3096건에 이른다. 이 중 4253건은 측정값을 축소해 실제 배출농도의 평균 33.6% 수준으로 떨어뜨렸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 배출 부과금을 면제받는 따위의 경제적 이득을 노린 짓이다. 측정하지 않았으면서 한 것처럼 속이고, 배출 기준치를 173배 이상 초과했는데도 ‘이상 없다’고 조작한 사례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드러난 건 환경부 소속 영산강유역환경청이 지난해 3월부터 광주, 전남 지역의 측정 대행업체 13곳만을 조사한 결과다. 불법 조작 사례가 얼마든지 더 있을 개연성이 높은 셈이다. 환경부가 공식 자료에서 이번 사례를 ‘빙산의 일각’이라고 표현한 배경이다.
미세먼지 오염원의 관리 실태가 이런 지경에서 제대로 된 정부 대책이 나오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공조해야 하는 터에 우리 정부의 협상력을 현저하게 떨어뜨리는 일이기도 하다. 불법 조작에 가담한 업체들을 엄히 벌해서 경각심을 높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대기 오염원 관리·감독 체계 개선도 아울러 필요하다. 측정 대행업체와 배출 사업장 관리업무가 지방자치단체로 넘어간 2002년 이후 불법 행위가 늘고 있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일 만하다. 사업장 규모에 따라 매주 1회~반기 1회씩 배출 농도를 자체적으로 측정하거나 대행업체에 의뢰해 조사하게 돼 있는 현행 방식이 유효한지도 따져봐야 한다. 환경부가 감사원 감사와 전국 일제 점검을 토대로 5월에 내놓기로 한 종합 방안에서 내실 있는 개선책을 담아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