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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낙태죄’ 위헌 심판, 변화 반영한 결정 기대한다

등록 2019-04-08 18:02수정 2019-04-11 10:42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69조 1항과 270조 1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오는 11일 위헌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2012년 8월 합헌과 위헌 의견이 4 대 4로 맞서 합헌으로 결정된 뒤 7년 만이다. 그동안 낙태와 관련한 우리 사회의 논의와 국제사회 권유가 활발하게 이어졌던 만큼 헌재의 이번 결정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낙태죄 폐지론자들은 문제의 조항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주장해왔다. 실제로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직업과 경력 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에 당사자로서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여러 사정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하면 여성의 삶이 심각한 위기로 내몰리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박탈하고도 정작 이에 따른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해온 게 현실이다. 그 결과 여성의 건강권과 생명권은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위험에 노출됐다. 불법 수술에 기댈 수밖에 없기에, 수술 과정의 위험이나 수술 뒤 부작용도 여성 혼자 떠안도록 구조화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헌재에 ‘낙태죄 위헌’ 의견을 낸 것은 이런 사정들을 살펴 신중하게 판단한 것이라고 본다.

우리나라의 낙태죄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에서도 꾸준히 폐지를 주문해왔다. 지난해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대한 최종 권고문에서 “안전하지 않은 여성의 임신중절이 모성 사망과 질병의 주요 원인”이라며 낙태 합법화, 비범죄화, 처벌 조항 삭제를 주문했다. 유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위원회도 2017년 같은 취지로 권고한 바 있다. 우리나라가 ‘여성 인권의 갈라파고스’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낙태죄 폐지가 태아의 생명권을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태아의 생명권은 마땅히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낙태를 ‘처벌’하는 것만으로 입법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걸 우리 모두가 안다. 2018년 보건복지부의 인공임신중절 실태 조사에서 임신 경험 여성의 19.9%가 여러 이유로 낙태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선 연간 17만건의 낙태 수술이 이뤄진다고 한다.

낙태죄를 앞세우다 보니 태아 생명권에 관한 실질적인 논의도 가로막힌 게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처벌 조항을 없애더라도 의료법 개정 등을 통해 조화로운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본다. 11일 헌재 결정이 이를 위한 새로운 논의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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