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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낙태죄’ 폐지, 사회적 합의 이룰 때 됐다

등록 2019-02-15 18:10수정 2020-11-23 17:50

가임여성 75.4%가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답했다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14일 발표는, 인공임신중절을 이유로 여성들에게 범죄의 굴레를 씌웠던 낡은 조항이 이제 더이상 시대에 맞지 않음을 보여준다. 올해는 이 오래된 사회적 논란의 매듭을 짓는 원년이 되어야 할 것이다.

8년 만의 정부 차원 실태조사는 2017년 말 청와대 게시판의 ‘낙태죄 폐지’ 청원 서명자가 23만명에 달하며 조국 민정수석이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때”라고 밝힌 데 따라 이뤄진 것이다. 만 15~44살 임신이 가능한 여성 1만여명이 온라인에서 답한 결과를 보면, 임신 경험자의 20% 가까이가 인공임신중절을 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학업·직장 등 사회활동 지장 △경제 형편의 어려움 △원하지 않거나 터울 조정 등 자녀계획을 대표적 임신중절 이유로 꼽았는데 이는 현행법상 모두 ‘불법’에 해당하는 것이다. 연간 임신중절수술은 5만건으로 추산돼 이전 조사보다 큰 폭으로 줄어든 것으로 추정되지만, 낙태가 ‘범죄’인 현실에서 실제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에서 추산하는 규모는 그 몇배에 달한다. 온라인에는 음성적인 임신중절 약품 거래도 넘쳐난다. 무엇보다 여성계에선 이번 조사의 문항들이 ‘저출산’ 해결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았는데도 응답자의 75% 넘는 이가 낙태죄 조항 개정이 필요하다고 답한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헌법재판소는 올봄 7년 만에 낙태죄 위헌 여부 판단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낙태죄를 둘러싼 논란은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의 대립 구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남성들에겐 어떤 책임도 묻지 않은 채 형법 269조와 270조가 낙태한 여성과 의료진만 처벌하는 상황에서, 낙태 여성에 대해 ‘책임감 없거나 이기적 존재’라는 낙인찍기 또한 이어져왔다. 낙태죄 조항은 여성의 재생산권을 국가가 통제하려는 발상으로, 여성의 건강권뿐 아니라 인권 침해라는 점을 이제는 온 사회가 인식할 때다. 전통적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도 낙태죄 조항을 폐지하는 등 전세계적으로 여성과 태아의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 새로운 균형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활발하다.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헌법재판소의 판단과 모자보건법 전면 개정 등 입법적 노력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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