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증권선물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31일 서울 세종로 금융위원회에서 열린 증권선물위원회 정례회의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 관련 안건을 상정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단
회계부정 혐의로 금융감독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내부 문건이 <한겨레> 보도를 통해 잇따라 공개됐다. 회계처리 기준을 바꾼 게 고의적이었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와 관련돼 있었음을 보여준다. 핵심 쟁점에서 삼성바이오 쪽의 공식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삼성바이오의 회계처리 기준 변경이 이재용 부회장 승계 문제와 연결돼 있었을 것임은 짐작돼온 바다. 이번에 드러난 내용의 의미는 이를 내부 문서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통합 삼성물산은 9월(2015년) 합병 시 제일모직 주가의 적정성 확보를 위해 바이오 사업가치를 6조9000억원으로 평가하여 장부에 반영’. 이는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이재용 부회장에게 유리하게 산정된 ‘합병 비율’과 직결되는 부분이며, 회계처리 기준 변경이 물산과 모직의 합병과 무관하다는 삼성바이오 쪽 주장과 상반된다. 당시 합병 덕에 삼성물산을 통해 그룹 전체를 장악하는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력은 더 단단해졌다.
회사 내부 문건들에는 이 밖에도 회사 쪽 주장과 다른 대목이 여럿 있다. 요약하면, 삼성바이오가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회계기준을 바꿔 4조8000억원의 회계상 이익을 얻은 것에 대한 그간의 공식 해명이 내부 검토 내용과 전혀 다르다. 이재용 부회장에게 이득을 안겨주는 쪽으로 고의적인 회계부정이 저질러졌다는 의혹을 뒷받침한다.
삼성바이오의 회계부정 혐의는 금융감독원 단계에서 이미 인정돼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의 최종 판단을 앞두고 있다. 증선위는 7월 심의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매우 이례적으로 금감원에 재감리를 요청해 의구심을 자아냈다. 삼성과 얽힌 사안이라 미뤘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금감원 재감리에서도 고의 분식 혐의가 인정돼 다시 증선위 심판대에 올랐으며, 지난달 31일부터 심의를 벌이고 있다.
거듭 말해온 대로 회계부정은 자본시장 질서를 뿌리째 흔드는 중대한 범죄행위다. 해당 회사 투자자들에게는 직접적인 재산상 손실을 끼치는 일이기도 하다. 증선위가 적절하고 신속하게 판단을 내려 응분의 책임을 물음으로써 유사 행위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 삼성 관련 사안이라고 해서 미루거나 허술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시장 불확실성을 키우는 일이며, 투자자는 물론이고 궁극적으로 회사에도 유익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