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시·도교육청 감사에 적발된 사립유치원 명단 공개로 여론이 들끓자 정부와 여당이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국가회계시스템(에듀파인) 확대 적용을 추진하고, 정기 실태조사를 벌이며 중대 비리가 적발된 유치원과 원장의 실명을 공개하는 등의 고강도 방안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유치원의 투명성 강화를 위해 이런저런 대책이나 법률안이 나왔지만 사립유치원 쪽의 거센 반발과 로비 탓에 중단됐던 게 한두번이 아니다. 이번만큼은 물러서선 안 된다.
사립유치원 쪽의 집요한 공세는 상상을 초월한다. 감사의 무풍지대였던 사립유치원은 2013년 누리예산 본격 도입으로 그나마 감사를 일부 받게 됐는데, 감사관을 노골적으로 회유하거나 협박한 사례들을 보면 ‘과연 교육자인가’ 싶을 정도다. 국회의원들 역시 유아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법안들을 냈다가 이들의 압력에 법안을 철회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국공립 유치원이 지난해 대비 올해 54곳이 늘었는데도 원아 수는 32명밖에 늘지 않은 것도, 사립유치원 반발로 수요가 높은 도시가 아니라 농어촌 지역에 숫자 채우기 식으로 늘린 결과라는 지적이 많다. 사립유치원장들의 지역 내 영향력과 ‘표심’을 의식한 국회 및 시·도의회 의원들, 그리고 교육청·교육부의 책임 또한 무겁다.
사실 정부가 계획했던 것만 제대로 추진했어도, 지난 9월부터는 사립유치원의 돈 쓰임새가 실시간으로 모니터링되고 사이버 감사가 가능했다. 2013년 나온 유아교육 5개년 계획에 따라 올해 8월말까지 완성될 예정이던 유아교육종합정보시스템 구축은 올초 새 5개년 계획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지난해 9월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집단 휴원을 예고한 것도 내심은 이 시스템 구축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이미 2010년 정부가 비슷한 계획을 추진해 경기도교육청의 시범사업에 따라 도입이 임박했을 때도, 사립유치원들의 거센 반발로 교육부가 중단시킨 바 있다.
이번에도 ‘용두사미’가 되지 않으려면 차제에 체계적인 법률 정비로 논란의 여지가 없도록 해야 한다. 큰 방향은 이미 나와 있다. 한 유치원당 한해 5억원 안팎 들어가는 누리예산을 ‘지원금’이 아니라 ‘보조금’ 명목으로 바꿔, 전용할 경우 횡령죄로 처벌하도록 하는 것, 원장의 ‘셀프징계’를 막고 ‘간판갈이’가 불가능하도록 징계를 받으면 일정 기간 재개원을 금지하도록 하는 것 등이다. 명단을 공개했던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유아교육법, 사립학교법, 학교급식법 개정을 추진중인데, 국회가 여야 없이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정부는 비리엔 단호하게 대응하되, 회계시스템 도입이 버거운 소규모 유치원에는 실질적 도움을 주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유치원의 공공성 강화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종합대책을 빨리 내놓길 바란다. 유치원에 대한 불신이 커질수록 피해는 우리 아이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슈비리 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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