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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김이택 칼럼] MB는 ‘국가농단’ 한 것 아닌가

등록 2017-11-13 17:22수정 2017-12-06 14:49

김이택
논설위원

‘다스 폭탄 터질 것 같은 예감’(2011년 5월28일치 ‘아침햇발’)이란 칼럼을 쓴 게 6년 반 전, 이번엔 다스뿐 아니라 여러 폭탄이 동시에 터질 분위기다.

‘#그런데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는 국민적 의문은 사실 부각되지 않았을 뿐 음지에서 싹을 키우고 있었다. 2011년 1월 처남 김재정씨 사후에 부인이 시가 100억원어치나 되는 다스 지분 5%를 이명박 전 대통령이 만든 청계재단에 기증한 것부터 이상했다. 최근엔 최대 주주인 이상은씨의 아들을 제치고 이 전 대통령 아들 이시형씨가 해외법인 네곳의 대표로 등기된 사실까지 확인됐다. 시선은 한 사람에게 쏠릴 수밖에 없다.

시대착오적인 블랙리스트·화이트리스트는 아버지에게 잘못 배운 ‘박근혜 청와대’나 하는 짓인 줄 알았더니 이명박 청와대는 한술 더 떴다. 청와대 민정·홍보 등 수석들의 깨알 지시를 받은 국정원은 아예 ‘좌파 연예인 대응 티에프(TF)’(팀장 김주성 기획조정실장)까지 만들어 ‘브이아이피(VIP) 일일보고’도 했다. ‘엠비시(MBC) 정상화’ ‘케이비에스(KBS) 인적쇄신’ 문건도 국정원이 만들어 보고했다. 김미화·김구라 등은 ‘좌편향’ 출연자니까 쫓아내고 손석희 앵커는 ‘반드시 교체’하라는 지침도 그대로 집행됐다. 대통령 비판하는 명진 스님에게는 청와대의 홍보·민정 수석, 기획관리비서관(국정상황실장)까지 줄줄이 달려들어 국정원에 손보라는 지침을 내렸다. 대기업 돈 뜯어 우익단체 지원·동원한 것도 이명박·박근혜 청와대가 똑같다.

더 심각한 건 댓글공작 등 선거·정치 개입 문제다. 정보기관과 군을 선거에 끌어들인 건 단순히 국정원법이나 군형법 등 실정법 위반 차원을 넘는다. 이 전 대통령은 “박근혜 후보를 도울 이유가 없다”며 부인했다지만 드러나는 정황은 그렇지 않다. 국정원·국방부 문서마다 ‘브이아이피(VIP) 보고’가 등장하고, 구속된 당시 국방장관은 대통령의 증원 지시를 시인했다. 선거 앞두고 10배나 댓글부대를 늘리라는 게 과연 대북 심리전을 강화하라는 뜻이었을까.

선거는 민주주의의 기초다. 여기에 군과 정보기관을 동원하는 건 말 그대로 ‘국기문란, 헌정유린’이다. 블랙리스트·화이트리스트도 직권남용죄 차원을 넘어 창작·표현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같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뒤흔드는 문제다. 30년 전 피와 땀으로 쟁취해 이제는 뒷걸음질 칠 리 없다고 철석같이 믿은 국민의 뒤통수를 쳤다. 박근혜의 국정농단보다 더 심각한 엠비(MB)의 ‘국가농단’이다.

쏟아지는 국가농단 증거에도 불구하고 ‘정치보복 수사’ 주장이 꿋꿋이 계속되고 있다. 12일 출국한 의혹의 당사자도 직접 “정치적 보복”이 의심스럽다고 공개 주장하고 나섰다.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가 조사해 발표한 15건은 하나같이 언론이 이미 보도했거나 수사기관을 한번씩 거쳤는데도 의혹이 남았던 사안들이다. 새로운 걸 파헤치거나 끄집어낸 게 아니다. 이명박 청와대의 정무수석실 행정관이 들고나온 국정원·경찰의 청와대 보고서가 이미 715건이나 됐다. 이 가운데 13건은 <세계일보>를 비롯한 언론에도 이미 공개됐다. 총선·대선에서 여당 후보 당선에 필요한 선거운동 방법을 국정원이 제안한 ‘에스엔에스(SNS)의 선거 영향력 진단 및 고려사항’을 비롯해 청와대-국정원의 선거·정치 개입 공모 혐의 물증이 상당수다. 다른 것도 대부분 정치공작 범죄의 증거물이다. 이런 걸 덮지 않고 조사·수사하면 정치보복인가.

전직 대통령 수감 중에 전전 대통령까지 파헤쳐야 하겠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일부 개혁 성향 학자들까지 적폐청산만 할 거냐는 우려를 제기한다. 할 수 있는 걱정들이다. 그러나 드러나는 혐의를 보자. 그런 차원에서 접근할 사안인가. 아니라고 본다. 지난달 하순 <한겨레> 조사에서 국민 68.3%가 ‘적폐수사 잘하고 있다’며 정부가 가장 잘하는 것으로 ‘국정원 개혁’을 1순위(15.8%)로 꼽았다. 이게 보통 국민들의 생각이다.

국격, 예우, 통합 필요성도 거론한다. 그러나 모두 진실이 온전히 드러난 뒤에나 고민할 일이다. 당시 국정원장이 유죄판결을 받고 국방장관은 구속됐는데도 사과·유감 표명은커녕 언론과 국민을 훈계 질책하는 예비 피의자 앞에서 할 얘기는 더더욱 아니다.

선거 앞두고 전직 대통령을 두 사람이나 감옥에 보낼 경우 정치적 부담을 더 느끼는 쪽은 여권일 것이다. 그러나 판도라의 상자는 이미 열렸다. 증거물은 넘쳐나고 수사는 진행 중이다. 누가 국가농단 사건을 이쯤에서 덮자고 나설 자격이 있는가.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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