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밤 경북 경주시 남남서쪽 8㎞ 지점 지하에서 일어난 규모 5.8의 지진은 기상청이 1978년 지진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규모가 큰 것이었다. 진앙에서 가까운 지역은 진도가 최고 6에 이를 정도로 흔들림이 컸고, 서울에서도 많은 사람이 진동을 몸으로 느꼈다. 7월에도 울산 앞바다에서 규모 5.0의 지진이 일어난 바 있다. 과거 큰 지진에 따른 피해가 기록에 많이 남아 있는 이 지역에서, 최근 들어 강진이 다시 빈발하고 있다. 앞으로 훨씬 더 큰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를 더는 기우로 치부할 수 없게 됐다.
불안감을 더 키우는 것은 이곳이 세계에서 가장 핵발전소가 밀집한 지역이란 점이다. 월성 핵발전소는 이번 지진의 진앙에서 불과 27㎞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또 근처에 신월성, 고리, 신고리 핵발전소가 있고, 울진의 한울 핵발전소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반경 30㎞ 안에 수백만명이 사는 곳인데,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지난 6월 신고리 5, 6호기의 추가 건설까지 승인했다.
정부는 핵발전소에 내진 설계가 돼 있어 지진에 안전하다고 강조한다. 모든 발전소가 규모 6.5의 지진을 견딜 수 있게 설계했고, 신고리 3호기부터는 규모 7.0을 견디게 설계했다는 것이다. 원자로 내진 설계 기준을 뛰어넘은 지진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은 오만한 일이다. 신라 때 경주 지역에 지진이 나서 100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지진이 규모 7 이상의 지진일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추정을 무시해선 안 된다. 일본에서도 규모 9.0 수준의 지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대처하다가, 2011년 3·11 동일본 대지진 때 대규모 인명피해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지 않았던가.
원자로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지진해일만이 아니다. 동일본 대지진 때 미야기현 오나가와 핵발전소는 지진해일로 인한 피해는 작았다. 하지만 진도 6의 지진으로 1호기 변압기가 고장 나면서 외부에서 끌어쓰던 전원이 모두 끊겨 11시간을 비상용 디젤발전기에 의존해 버텨야 했다. 4월7일 여진 때는 3호기의 외부 전원망 5개 가운데 한 개만 남고 모두 끊기는 사태가 빚어졌다. 두 차례 모두 가까스로 핵 폭주를 면했다.
핵발전엔 절대 안전이란 말이 결코 성립할 수 없다. 그리고 한번 사고가 일어나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해치는 것은 물론이고 나라의 존망까지 위태로워질 수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은 지금도 대기와 바다로 방사성 물질을 계속 내뿜고 있다. 언제쯤 멈출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국민을 속이고, 진지한 반대의 목소리를 억눌러가며 밀어붙이는 핵발전 정책을 정부는 더 늦기 전에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특히 활성 단층이 많은 부산·경남 지역에는 핵발전소나 핵 관련 시설을 더는 짓지 말고, 낡은 핵발전소는 가능한 한 앞당겨 가동을 멈춰야 한다. 천추의 한을 남길 수도 있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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