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 파문’을 빚어온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됐다. 역시 사실상 확정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와의 가상 대결에서 트럼프 후보가 앞서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온다. 대선이 치러지는 11월 초까지 많은 변수가 있겠지만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경우까지 상정한 대비가 필요한 상황이 됐다.
한해 전만 해도 생각할 수조차 없었던 ‘트럼프 돌풍’이 현실에 뿌리내린 배경에는 미국 정치 지형의 변화가 자리잡고 있다. 흑인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소수인종과 여성의 큰 지지를 받아 재선에 성공한 데서 보듯이 미국 인구구조에서 백인 남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줄고 있다. 게다가 백인 중하류층은 기존 정치가 엘리트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피해의식을 갖는다. 트럼프 후보는 이들의 불만과 불안을 선동적인 공약으로 공략해왔으며, 공화당 주류도 이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각국은 우선 트럼프 후보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외교·안보 정책에 주목한다. 그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맹국들의 안보무임승차론을 공식화하면서, 방위비 분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하거나 핵우산 제공을 거둬들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엄포가 일부만 실현되더라도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구도는 크게 바뀔 수밖에 없다. 그가 내세우는 보호주의 정책 또한 기존 국제경제 질서와 충돌한다. 우리로선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그가 당선되더라도 공약을 그대로 이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와 무관하게 분명한 추세가 있다. 지구촌이 다극화하면서 미국이 패권 유지에 갈수록 부담을 크게 느끼고 있으며, 인구구조 변화 등으로 미국 정치의 안정성이 떨어지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는 이를 현실로 인정하고 미리 대비해야 한다. 미국이 없는 우리나라 외교·안보는 생각하기 어렵지만 기존 구조를 금과옥조로 여기고 안주해서도 안 된다.
트럼프 후보는 배외적이고 선동적인 태도 탓에 히틀러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가 당선되더라도 히틀러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다. 더 눈여겨봐야 할 것은 그를 통해 표현되고 그로 인해 바뀌어가는 미국 정치의 토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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