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누리과정 지원용으로 편성된 예비비(3000억원)를 정작 ‘보육대란’이 우려되는 지역을 제외한 채 이미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한 교육청들에만 지급하기로 했다. 정부와 각을 세우며 예산을 미편성한 교육청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얼마 전 이런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예견됐던 일이기는 하지만, 정부가 하는 일치곤 창피할 정도로 옹졸하다.
먼저 짚고 넘어갈 점은 교육청에 예비비를 지급하는 것 자체가 기존 정부 논리와 모순된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그동안 ‘누리과정에 필요한 재원을 교육청들에 충분히 지급했다’고 주장해왔다. 새누리당은 길거리에 “교육감님, 정부에서 보내준 누리과정 예산 어디에 쓰셨나요?”라는 자극적인 펼침막을 내걸기도 했다. 그 말이 맞는다면 일부 교육청들이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거기에 예비비를 써가며 별도로 지원해줄 이유가 없는 셈이다.
하지만 실상은 정부 설명과 달리 교육청들이 누리과정 비용을 떠안기가 불가능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한 교육청들도 교육환경 개선, 방과후 프로그램 지원, 저소득층 학비 지원, 급식시설 개선 등 다른 필요한 예산을 축소·삭감해야 했다. 해당 지역 초·중·고교 학생들이 대신 피해를 볼 판이다.
예비비 지급을 하려면 정부·여당은 그에 앞서 누리과정 재원을 교육청에 충분히 내려보낸 양 사실을 호도한 데 대해 사과부터 해야 한다. 그리고 전체 누리과정 예산에 견줘 극히 일부분인 예비비를 지급하더라도 결국엔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식의 임시방편일 뿐임을 인정해야 한다. 나아가 근본적인 재원 조달 방법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교육감들을 상대로 ‘말 잘 들으면 떡 하나 더 주지’ 식의 유치한 놀음이나 하고 앉아 있을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일 “실질적이고 현실 가능한 정책으로 비판을 해달라”며 정치권을 비판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야말로 누리과정에 대해 현실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 중학교 의무교육을 도시로 확대했던 김대중 정부나 유아 무상교육을 확대했던 노무현 정부는 교육청에 주는 교부금을 그만큼 늘림으로써 재원 문제를 미리 해결했다. 누리과정은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이 주도한 정책이다. 그래 놓고 재원 대책은 나 몰라라 하는 건 무책임 정치의 극치다. 이 정부는 툭하면 “국민이 나서 달라”고 하는데 누리과정 문제야말로 국민이 나서야 정부가 움직일 것인가.
이슈누리과정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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