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20일 교육·보건복지·고용노동·여성가족부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장황한 발언을 했다. 그러나 정작 최대 현안의 하나인 ‘보육대란’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누리과정(만 3~5살 무상보육) 예산이 편성되지 않은 서울·경기 등에서 1월치 어린이집·유치원 지원비가 지급되지 않는 등 보육대란은 현실화 국면으로 들어섰다. 어린이집은 아직 결제일에 여유가 있다고 해도 유치원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학부모들은 수십만원에 이르는 비용을 부담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관련 분야 업무보고 자리에서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니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이처럼 시급한 민생 현안에 관심이 없는 건지, 책임을 모면하자는 뜻인지 이유를 모르겠다. ‘0~5살 보육 국가책임’이라는 대선 공약을 내걸었던 장본인으로서 자신의 공약에서 비롯된 대혼란 사태를 나 몰라라 하는 건 무책임의 극치다. 또한 박 대통령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지난달 역대 처음으로 직접 회의를 주재하며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내놓았다. 그래 놓고도 보육대란에 무관심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정부 정책의 위선을 잘 보여준다.
박 대통령의 공약으로 누리과정이 확대됐음에도 이에 따른 추가 비용을 정부가 책임지지 않고 교육청에 떠넘기는 바람에 교육 재정이 혼란을 겪고 있는 게 보육대란의 본질이다. 교육청들은 그동안 누리과정 예산을 감당하기 위해 초·중·고 학생들에게 써야 할 교육 예산을 깎고 엄청난 빚까지 냈다. 누리과정 문제로 교육 전반이 부실해지고 있는 것이다. 더는 그럴 수 없다고 판단한 일부 교육청에서 예산 편성을 거부하며 정부에 근본 대책을 요구하고 있고, 다른 교육청들은 일반 교육 예산을 더 희생시켜 가며 누리과정 예산을 억지로 편성하고 있다. 국가의 백년대계라는 교육을 이렇게 허투루 다뤄서야 정상 국가라고 할 수 있는가.
정부가 보육대란을 어떻게 해결할 건지, 내년에도 이런 사태를 되풀이할 건지 국민은 궁금하고 불안하다. 박 대통령이 노동·경제 관련 입법에는 직분을 망각하고 서명운동에까지 나설 정도로 집착하면서 왜 보육대란에는 이토록 침묵하는지 의아하다. 21일 이준식 부총리가 시·도교육감들과 다시 만난다고 하니 이 자리에서라도 정부가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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