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정치권은 물론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일고 있는 추모 열풍이 대단하다. 고인의 가는 길을 최대한 따뜻하게 배웅하는 것이 우리의 전통이라고는 하지만,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전국민적인 추모 열기는 그런 차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고인의 정치 역정에 ‘공’뿐 아니라 ‘과’도 적지 않음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우리 사회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가치들에 대한 갈구와 희망이 고인에 대한 추모를 통해 분출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민주화, 통합과 화합, 선이 굵은 정치, 뜨거운 포용력, 인간적 매력, 거리낌없는 인재 등용…. 고인이 생전에 지녔던 미덕들과 숨지기 전 남겼다는 메시지다. 이런 말들이 지금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자명하다. 민주주의의 퇴행, 분열과 갈등, 속좁은 깨알정치, 오만과 독선, 냉정하고 인간미 없는 정치, 좁은 텃밭에서의 끼리끼리 나눠 먹기 등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 너무 남루하기 때문이다. 고인은 민주주의라는 말이 갈수록 천대받는 시기에 절묘하게도 민주화라는 말에 생기를 불어넣고 떠났다. 감동이 사라진 황폐한 시대에 가슴 벅찬 ‘감격 시대’의 역사도 다시 일깨워줬다. 우리 사회에 불어닥친 ‘복고’의 바람, 그것은 ‘더 오래된 복고’가 현재를 지배하는 추한 세상을 떠나면서 그가 던진 마지막 승부수는 아닐까.
문제는 지금 이 땅의 정치, 그리고 정치인들이다. 빈소에 모인 정치인들은 이구동성으로 고인을 추모하고 칭송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추억과 회고담’으로 맴돌 뿐이다. 고인이 정치적 거목으로 우뚝 선 원동력은 자신의 시대적 소명의식과 민중의 염원을 일치시키고, 이를 뜨거운 포용력과 매력적인 정치를 통해 현실로 일궈낸 능력이었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 시대 정치 지도자들은 그런 면모를 본받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을까. 고인과의 과거 인연을 내세우며 은근히 자기 자랑을 하는 사람은 많아도 고인의 미덕을 자기 것으로 만들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정치인은 별로 없어 보인다.
고인이 숨지기 전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통합과 화합’의 화두도 마찬가지다. 지금 고인의 빈소는 정치적 입장과 노선의 차이를 떠나 모든 정치인들이 한자리에 모여앉은 화합의 도가니다. 하지만 막상 빈소를 떠난 현실정치의 모습은 어떤가. 여야가 다시 극한 대립으로 맞서고 각 정당이 권력을 향한 낯뜨거운 내분에 빠져드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러니 ‘조문정치’니 ‘빈소정치’니 하는 말이 허무하게만 다가온다.
고인 서거로 나타난 사회적 현상에 답해야 할 가장 큰 책임은 역시 고인의 정치 문하생들한테 있다. 이들은 ‘상주’를 자처하기에 앞서 고인이 목숨을 걸고 이룩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현실을 고민해야 한다. 민주주의 퇴행의 선봉장을 자임하면서 고인을 ‘민주화 투사’라고 칭송하는 자신의 입술을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아버지의 유산이 도둑맞고 훼손되는 것을 도우면서 고인의 ‘정치적 아들’임을 내세우는 게 얼마나 몰염치한지 깨달아야 한다. 빈소에 모인 정치인들은 깊이 생각하기 바란다. 고인의 죽음을 한낱 흘러간 회고담으로 끝내고 돌아설지 아니면 현실을 바꾸는 새로운 원동력으로 삼을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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