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이 우여곡절 끝에 노동시장 구조 개편에 ‘잠정 합의’했다. 막판까지 팽팽하게 의견이 엇갈리던 저성과자 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등 핵심 쟁점과 관련해 절충안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문제점이 결코 적지 않다. 과연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과 청년 일자리 확대 등 정부가 ‘노동개혁’의 명분으로 내걸었던 목표를 제대로 이룰 수 있을지 매우 의심스럽다. 이 때문에 14일 열린 한국노총 중앙집행위원회도 격론 끝에 합의 내용을 추인했다.
저성과자 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완화 항목만 봐도 알 수 있다. 법·제도 개선 때까지는 정부가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로 했는데, ‘합의’의 강제성이 없으므로 결국 정부의 의지를 그대로 반영하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노동자의 90%가 노조의 테두리 밖에 놓여 있는 게 우리 노동 현실이다. 정부와 재계, 보수언론이 한목소리로 대기업 중심의 ‘나쁜 노조’ 프레임을 들고나왔는데, 정작 노동자 대다수가 ‘쉬운 해고’의 위험에 완전히 노출된 셈이다.
임금피크제 도입이 불러올 파장에 비해 보완책은 완전히 관심권 밖으로 내몰려 있다. 백번 양보해 정부·재계의 주장대로 임금피크제가 청년 일자리 창출에 보탬을 준다 치자. 정년이 늘어난 직원의 직무 재배치 등 실질적인 지원책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기업이 ‘질 좋은’ 신규 청년 일자리를 늘릴 유인은 크지 않다. 질 좋은 일자리를 늘리지 못하는 청년실업 대책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지금도 적은 수의 노동자만이 정년을 채우는 현실에 비춰본다면, ‘저성과자 해고와 임금피크제 패키지’는 청년 일자리를 늘리기보다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위축시키는 효과만 극대화할 공산이 크다.
이번 잠정합의 내용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우리 경제의 두 바퀴라 할 노동계와 재계에 끼치는 영향이 ‘상호 비대칭적’이란 점이다. 노동자의 임금은 줄어들고 해고 위험은 커졌다. 노동자가 떠안은 부담은 현실적이고 확정적이다. 반면, 기업은 해고나 임금 삭감을 자제하도록 노력하라고 권고받을 뿐이다. 기업의 부담은 현실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한쪽으로 심각하게 기울어진 ‘합의’인 셈이다.
모두가 만족하는 합의에 이르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사회적 대화의 전통이 얕은 우리 사회에서 노사정 모두가 마지막까지 타협을 이끌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 점은 평가받을 만하다. 그렇기에 잠정합의 자체를 무작정 걷어차고 원점으로 돌리는 일이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잠정합의 내용이 지닌 명백한 한계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노사정 모두에 큰 오점으로 남을뿐더러 진정한 노동개혁의 성과를 이뤄내지도 못한다. 무엇보다 정부가 기울어진 균형추를 다시 바로 세우려는 노력을 쏟아야 한다. 이제라도 생각만 고쳐먹는다면 시간은 충분하다.
이슈노사정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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