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7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관통한 단어들은 진실과 양심, 정의와 인권, 민주주의 같은 것이었다. 그가 수사검사로서 참여한 박종철씨 고문치사 및 은폐 조작 사건의 핵심을 이루었던 역사적 단어들이 28년의 세월을 지나 다시 공론의 장에 등장한 것이다. 이날 국회 인사청문회는 이런 본질적 가치들에 대한 박 후보자의 과거 행적뿐 아니라 지금의 생각 등을 종합적으로 판정하는 자리였다. 유감스럽게도 그 결론은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인사청문회에서 가장 놀라운 광경은 박 후보자가 “수사팀의 일원이었지만 부끄럽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말한 대목이다. 검찰에 몸담은 사람들 중 대다수가 검찰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졸속·부실 수사로 박종철씨 사건 수사를 꼽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인식인 셈이다. 박 후보자는 단지 “경찰의 조직적 사건 축소·은폐를 밝히는 과정이 길고 힘들었다”며 “검사로서 그런 능력이 주어지지 못한 데 대한 스스로의 질책과 안타까운 마음을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박 후보자의 이런 인식은 ‘당시 막내 검사가 무슨 힘이 있었겠느냐’는 이야기와는 전혀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다. 당시 검찰의 부실 수사가 관계기관 대책회의 등 정권 차원의 ‘통제’ 결과라는 점이나, 사건의 진실이 결국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등의 폭로가 있고 나서야 밝혀진 점 등의 역사적 사실들은 그의 머릿속에서 지워져 있었다. 당시 주임검사였던 안상수 현 창원시장마저 “검찰의 치욕이고 검찰이 존재하는 한 자괴심은 영원히 씻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으나 박 후보자에게는 치욕도 자괴감도 없었다. 그러니 당시에 그가 공범의 존재 등 사건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는 상황인데도 서둘러 수사를 마쳤다는 관련자들의 증언에 대해 털끝만큼도 인정할 리가 없었다.
박 후보자의 이런 인식 앞에서 법과 양심, 정의나 자유를 논하는 것은 참으로 허무할 뿐이다. 박 후보자가 진정 대법관이 되고 싶다면 최소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반성할 점은 반성한 뒤, 그 토대 위에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해야 옳다. 그런데 박 후보자는 박종철씨 고문치사 은폐 조작 사건을 마치 ‘교활한 범죄자들’과 ‘능력 없는 검사들’이 대결한 단순한 형사사건 정도로 격하시켜버렸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기 바빴다. 역사와 진실에 눈감는 견강부회의 모습이야말로 박 후보자가 인권의 마지막 보루인 대법관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웅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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