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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고문치사 축소 책임’ 뚜렷해진 박상옥 후보자

등록 2015-03-08 18:37수정 2015-04-09 00:46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가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수사하면서 추가 공범이 있을 가능성을 인식하고도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지 않은 정황이 당시 재판 기록을 통해 드러났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젊은이를 잔혹하게 고문·살해한 국가폭력을 축소·은폐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이 더욱 확연해진 것이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는 검찰 역사에 치욕으로 남은 졸속·부실 수사였다. 검찰은 그해 1월 치안본부 대공수사관 2명만 고문에 가담한 것으로 결론짓고 나흘 만에 수사를 끝냈다. 2월27일 이들이 자진해서 공범 3명이 더 있다고 털어놨지만, 검찰은 계속 뭉개다가 5월18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폭로가 나오고서야 2차 수사에 들어갔다. 이때 경찰 총수인 강민창 치안본부장까지 고문 은폐에 가담한 사실도 알게 됐으나 검찰은 추가 공범 3명과 다른 간부 3명만 구속하고 다시 수사를 종결했다. 강 치안본부장은 수사검사였던 안상수 변호사(현 창원시장)의 폭로로 이듬해 1월 3차 수사에서 구속됐다. 같은 사안을 두고 3차례나 수사가 반복된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들다. 그만큼 감추고 덮기에 급급했던 수사였다.

박상옥 후보자는 부실로 얼룩진 1·2차 수사에 참여했다. ‘막내 검사’였다지만 그는 핵심 관련자들을 모두 조사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그가 1차 수사 과정에서 추가 공범 3명 중 한 명을 주범으로 거명했다는 사실이 이번에 드러났다. 공범이 더 있으리라고 짐작하고도 이를 집중 수사하지 않은 것이다. 왜소한 체구의 경찰관 둘이서만 물고문을 자행하기는 힘들다는 점 등 공범의 존재를 시사하는 사실관계들도 제대로 파고들지 않았다. 구속된 수사관이 ‘사태 수습을 내세우며 수사검사가 진술을 유도하여 사실대로 진술하지 못했다’고 법정에서 밝히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같은 수사팀 출신인 안상수 시장이나 신창언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등은 이 문제로 비난받지 않았다며 박 후보자를 두둔하기도 한다. 하지만 안 시장은 늦게나마 양심고백을 통해 3차 수사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사정이 다르다. 또 1994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박종철군 사건과 관련이 있는 신창언씨의 (헌재 재판관) 추천 등으로 절망감을 느낀다”고 비판한 바 있다. 더구나 인사청문회도 없이 대법관과 헌재 재판관을 임명하던 당시와 비교할 때 지금 최고 법관에게 요구되는 자질과 도덕성은 천양지차라고 할 수 있다.

박 후보자가 대법관에 오르는 것은 역사의 퇴행이자 헌법 정신에 대한 배반이다. 사법부의 신뢰도 크게 훼손될 것이다. 법조인 가운데 대법관 자격을 갖춘 이가 그리도 없단 말인가. 이런 인물을 임명 제청해놓고 국회에 동의 절차를 조속히 진행해달라고 요구하는 양승태 대법원장은 과연 역사의식과 사법부에 대한 책임감을 지니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인사청문회 개최 여부를 떠나 박 후보자 임명 제청은 철회되는 게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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