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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하종강 칼럼] 미래 노동자들에게 ‘중규직’을?

등록 2014-12-02 18:43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고등학교에서는 요즘 외부 인사 초청강연이 한창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청소년 인문학’ 등의 제목으로 가끔 참여할 기회가 주어진다. 교실이나 강당에서 하는 강의는 그나마 괜찮은데 체육관 바닥에 앉아 있는 학생들 수백명 앞에서 해야 하는 강의는 곤혹스럽다. 혈기 왕성한 십대 청소년들을 그렇게 한자리에 모아놓고 “조용이 하라”거나 “떠들지 마라”고 부탁하는 것이 오히려 비인간적이다.

우리 사회에는 ‘노동조합’이나 ‘노동운동’이 제조업체 생산직 ‘블루칼라’에게만 해당된다는 오해가 넓게 퍼져 있어서 그렇지 않다고 설명하는 데 시간을 많이 할애한다. 생산직 노동자뿐 아니라 백화점·은행·병원의 직장인들이나 연기자·예술가·공무원·교사·언론인도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석·박사 학위를 가진 연구원들이 설립한 노동조합만도 수십개에 이른다는 사실을 이렇게 저렇게 설명한다. 다른 나라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놀라울 정도로 자세하게 노동인권교육을 한다는 내용도 예를 들어가며 덧붙인다.

한 특성화고교에서 강의를 부탁받았다. 내비게이션 안내만으로 찾아가기 어려울 정도로 구석진 곳에 있는 학교였다. 두 시간가량 강의를 끝내고 선생님들과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옆자리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말씀하신다. “우리 학교는 중학교 때 한 반 30명 중에서 25등 이하 점수 학생들이 주로 오는 곳이어서, 선생님이 강의에서 예로 드신 직업들을 나중에 갖게 될 학생들이 사실 거의 없습니다.”

가슴 한쪽이 무너져 내리면서 큰 부끄러움으로 몸 둘 바 몰랐다. 그날 밤 강의 내용을 모두 뜯어고쳤다. ‘별 볼 일 없다’고 무시당하는 직종의 노동자들이 열심히 싸워 자신들의 권리를 지킨 사례들을 대폭 보강했다.

며칠 뒤, 다른 고등학교를 찾아갔다. 학생들이 “우리 학교 담을 넘으면 경기도예요”라고 말했을 정도로 도시 끝자락에 자리한 학교였다. 현관으로 마중 나온 선생님이 미리 양해를 구한다. “학생들이 학습의욕이 낮고 집중을 잘 못하는 편이어서요, 혹시 강의 중에 분위기가 산만하더라도 크게 마음 상하지는 마세요.” 나는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며칠 전에는 중학교 한 반 30명 중에서 25등 이하 점수 학생들이 주로 온다는 학교에서도 강의했는걸요. 뭘….”

선생님이 정색을 하고 말한다. “거긴 특성화고죠? 그 학교가 이 학교보다 낫습니다. 우리 같은 일반계 고등학교는 정말 대책이 없습니다. 학생들을 취업시키자는 것도 아니고 대학에 보내자는 것도 아니고….” 그 선생님을 비난할까봐 노파심으로 한마디 하자면, 그러한 학교에서 뭐 하나라도 해보자고 몸부림치는 선생님들이 주로 나 같은 사람들에게 연락을 한다.

이른바 ‘좋은 일자리’란 “명목임금 기준으로 전체 평균임금 수준을 상회하는 산업 부문에서 창출되는 일자리”, “정규직이면서 임금이 평균치보다 20% 정도 높은 일자리”, “30대 대기업 집단, 공기업, 금융업 종사자” 등을 가리킨다. 그런데 고등학교 한 반 30명 학생들 중에 나중에 ‘좋은 일자리’에 취업할 수 있는 사람은 약 한 명꼴이다. 그 한 명만 행복하고 나머지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면 결코 좋은 사회가 아니다.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행복한 사회가 되려면 노동자 권리가 존중되는 ‘좋은 일자리’들이 많아져야 한다. 지금처럼 열 명이 취업하면 그중 여덟 명이 비정규직인 사회에서는 모든 청소년들이 성적순으로 줄 서는 데 목을 맬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일자리를 줄이고 정규직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이른바 ‘중규직’이라는 새로운 고용계약 형태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한다. 미래의 노동자들에게 ‘중규직’을 선물로 줄 수는 없다. 그 암울한 미래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활동이 노동운동이다. 노동운동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은 그 활동에 참여해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기여하는 일이다. 민주노총이 처음 실시하는 위원장 직선제에 한번쯤 관심을 가져보자.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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