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0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제45회 국무회의에서 참석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하종강 |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성경의 한 대목을 이야기체로 풀어 설명해 본다.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 왕에게 백성들이 찾아와 “당신의 아버지인 솔로몬 왕이 우리에게 씌운 무거운 멍에를 좀 가볍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고된 노역을 조금 줄이고 세금도 조금 적게 낼 수 있게 해달라는 지극히 당연한 요구다. 르호보암 왕은 “사흘 뒤에 다시 오라”고 한 뒤 원로들과 상의한다. 원로들은 “왕께서 그들을 섬기고, 그들이 요구한 것을 들어주시겠다고 좋은 말로 답해주시면, 백성들은 평생 왕의 종이 될 것입니다”라고 조언한다.
르호보암 왕은 그 충고를 귀담아듣지 아니하고 자신과 함께 자란 친구들과 다시 상의한다. 친구들은 “당신의 아버지보다 더 무거운 멍에를 메우라”고 조언한다. 사흘 뒤 다시 찾아온 백성들에게 르호보암 왕은 친구들의 조언대로 “내 아버지가 당신들에게 메운 멍에보다 더 무거운 멍에를 메우겠다. 내 아버지는 당신들을 가죽 채찍으로 때렸지만 나는 쇠 채찍으로 치겠다”고 답한다.
르호보암 왕의 친구들은 왜 그렇게 조언했을까? 그렇게 자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솔로몬 왕 측근의 자식들로서 어릴 때부터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금수저’로 살았으니 가난을 모르고, 노동해본 적도 없어 백성들의 처지를 이해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 여당과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뒤 “이념 논쟁을 멈추고 민생에 집중하겠다”는 기조를 보였다. 지난 30일 국무회의 머리발언에서 윤 대통령은 “지난주 대통령실에서는 비서실장, 수석, 비서관, 행정관들이 소상공인 일터와 복지행정 현장 등 36곳의 다양한 민생 현장을 찾았다. 국민의 절박한 목소리들을 생생하게 듣고 왔다”고 했다. 그런데 민생 현장에서 국민의 절박한 목소리들을 생생하게 들은 뒤 깨달았다는 내용이 놀랍다.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식당에서는 끝없이 올라가는 인건비에 자영업자들이 생사의 기로에 있다며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을 내국인과 동등하게 지불해야 한다는 국제노동기구(ILO) 조항에서 탈퇴해야 되는 것 아니냐’며 비상대책 마련을 호소하셨다”고 했다. “50인 이하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내년부터 적용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두려워하는 목소리가 있었다”고도 했다.
윤 대통령은 “지금 당장 눈앞에서 도움을 기다리는 국민의 외침, 현장의 절규에 신속하게 응답하는 것보다 더 우선적인 일은 없다”며 “지금보다 더 민생 현장을 파고들 것이고 대통령실에서 직접 청취한 현장의 절규를 신속하게 해결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주목한 ‘국민의 절박한 목소리’란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이주노동자들의 호소가 아니라 그들을 고용하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고충을 의미하는 듯하다. 50인 안 되는 소규모 사업장에서 노동재해로 죽어가는 노동자들의 비명이 아니라 그 사업장 경영자들의 애로 사항이 “지금 당장 눈앞에서 도움을 기다리는 국민의 외침”이고 “직접 청취한 현장의 절규”인 듯하다. 차라리 내가 오해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독일의 이주노동 정책 담당자가 오래전 한국을 방문해 “독일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마라” 충고한 적이 있다. 독일 정부는 이주노동자 차별을 엄격하게 금지했지만 그들이 고국으로 돌아갈 것을 전제로 정책을 수립하는 실수를 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상당수가 독일 사회의 구성원으로 거주하는 선택을 하면서 독일의 다문화 사회를 형성했다. 우리나라 광부와 간호사들도 적지 않은 수가 독일에서 교포로 살아가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차등적인 노동조건을 적용하면 내국인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저하시켜 국가 경제에도 해로운 결과를 초래한다.
2022년 노동재해 사고사망자 874명 중 80.9%인 707명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사업주에게 부담된다는 이유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유예하는 것은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계속 죽도록 그냥 내버려 두자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사업주가 그 부담을 감당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옳은 정책 방향이다. 세금은 그런 데 쓰라고 있는 것이다.
정부 여당과 대통령이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자영업자의 고충에만 귀를 기울이고, 노동재해 예방에 소요되는 비용을 부담스러워하는 영세 사업주의 호소만 접하다 보면 어떠한 생각을 하게 될 것인지는 너무나 자명하다. 경영자의 말보다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말을 몇배나 더 많이 들어야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르호보암 왕이 금수저 친구들의 말만 듣고 따른 행위가 결국 그의 몰락을 재촉했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