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시기를 연기하기로 했다. 따라서 이 대통령 재임 마지막 해인 2012년 4월17일에 되찾기로 했던 전작권은 그 뒤 3년7개월이나 더 외국 군대의 손에 남게 됐다. 군사주권을 포기해 한반도 안보를 위태롭게 만드는 매우 잘못된 결정이다.
한-미 두 나라는 안보 개념에 차이가 있다. 한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게 한국한테 가장 중요한 반면에 미국은 세계 전략 차원에서 한국과는 다른 우선순위를 설정하기도 한다. 1994년 북핵 위기 때 미국이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 실행을 검토함에 따라 한국과 마찰이 빚어졌던 게 단적인 예이다. 이번 정상회담 결정은 그런 위험이 되풀이될 가능성을 열었다. 주권국가의 꼴에 맞지 않을뿐더러 안보문제에 대한 우리의 대외 발언권도 위축시키는 결정이다. 북한의 핵실험, 천안함 사건 등을 사정 변경 이유로 들지만 모두 턱없는 핑계이다. 천안함 사건은 전작권 환수를 늦출 게 아니라 오히려 당겨야 할 필요성을 환기시킨 사건이었다. 이 대통령은 구시대적 발상에 젖은 군 상층부의 말을 좇아 일을 거꾸로 풀었다.
정부가 극구 부인했던 것과 달리 전작권 환수 연기를 꾸준히 논의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밀실외교로 깜짝성과를 자랑하려는 모양이나,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중대한 거짓말을 해왔다는 비판을 피할 길 없다. 전작권 문제는 직접적 군사기밀이라고 보기 어렵다. 반대로 국가공동체의 안보 유지를 위한 큰 틀의 원칙 문제로, 전문가와 시민사회의 활발한 토론이 필요한 사안이다. 실제로 1987년 노태우 당시 대선후보의 전작권 환수 공약과, 1994년 평시작전통제권 환수, 2007년 전작권 환수 합의 때 모두 공론장에서 활발한 논의가 벌어졌다. 전작권 문제를 비밀공작 하듯이 다룬 것은 현 정부가 유일하다.
이러니 자유무역협정(FTA) 문제와 관련해 이면거래 의혹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미국 의회 등은 쇠고기 수입대상 월령 확대 등을 요구해왔다. 30개월령 이상 쇠고기와 부산물 규제는 2008년 정부가 미국과 재협상을 벌여 마련한 것이었다. 미국 쪽은 한국 자동차 시장과 관련해서도 추가 개방 조처를 요구해왔다.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재협의가 진행될 경우 2008년 촛불집회를 거치며 마련한 최소한의 식품안전장치마저 무너지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 자동차 분야는 참여정부가 협정을 맺을 당시 그나마 산업계 이익을 지켜냈던 분야로 평가됐는데 그나마도 내주는 것 아닌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군사주권은 포기하고 통상·식품안전 분야의 기존 성과는 내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이번 회담은 최악의 정상외교로 비판받을 만하다. 그 배경은 짐작된다. 일부 퇴역장성과 보수층의 정치적 주문을 의식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퇴영적 국정운영이 시대 흐름에 어긋나는 것임은 6·2 지방선거에서도 이미 드러났다. 정부는 이번 회담과 관련된 모든 과정을 즉각 공개해야 한다. 전작권과 자유무역협정 문제 모두 국회와 시민사회 등 공론의 장을 통해 검증되지 않을 경우 심각한 저항에 부닥칠 것이다.
이슈천안함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