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우리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의 주요 근거로 미국 정부의 동물성 사료 금지 강화 조처를 제시했다. 그런데 그 주장이 거짓으로 드러났다. 4월25일 미국 관보에 실린 내용을 보면, 미국 정부는 동물성 사료 금지를 강화하기는커녕 2005년의 입법예고안보다 더 완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정부는 내용 확인은 해보지도 않고 덜컥 협정 합의문에 서명한 꼴이 됐으니,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 협상내용에 또다른 구멍이 없다고 누가 자신할 수 있겠는가. 국민 건강과 직결된 사안을, 그것도 뜨거운 관심사였던 협상을 이렇게 엉터리로 처리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부의 수준이 이 정도인지 자괴감이 들 정도다.
우선,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철저한 조사를 해야 한다. 동물성 사료 금지조처는, 우리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안전의 핵심 근거로 홍보할 정도로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그런데도 협상 과정에서 이 부분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 그게 우리 협상팀의 실수인지, 그렇다면 언제 그런 실수를 알았는지, 잘못을 알면서도 국민에겐 거짓으로 홍보한 것은 아닌지 철저하게 가려야 한다. 만약 미국정부가 협상과정에서 약속한 내용을 나중에 뒤집은 것이라면, 미국에 책임을 묻고 당장 재협상에 들어가야 한다. 어느 쪽이든 이런 중요한 사안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우리 정부 협상팀의 책임은 피할 수 없다.
일본이나 유럽의 안전기준과 비교할 때, 이번 쇠고기 협상의 가장 큰 문제점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상대적으로 광우병 위험이 높은 30개월 이상 쇠고기까지 굳이 수입을 허용한 점과, 30개월 미만 소라도 일곱 가지 특정 위험물질(SRM)을 모두 제거해야지 왜 두 부위만 제거하고 수입을 허용했느냐는 점이다.
이번 쇠고기 협상은 한-미 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벼락치기로 타결돼, 처음부터 ‘졸속’이란 비판을 받았다. 협상팀이 중요한 사항들을 제대로 검토하지도 않고 서둘러 협상을 타결한 이유가 뭔지, 윗선에서 정상회담 전엔 무조건 타결하라는 지시가 있었던 건 아닌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국회 국정조사를 해서라도 이런 부분들에 대한 의혹을 씻어야 한다. 그래야 신뢰가 살아난다. 그때까지 15일로 예정된 수입 위생조건 장관 고시는 연기하는 게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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