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인들이 배우 이선균씨가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의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촉구하고 나섰다. 제2, 제3의 비극이 잇따르지 않도록 경찰의 망신주기 수사 행태와 언론의 인격침해 보도 관행을 바꿔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의 간절한 목소리에 우리 사회가 신속히 응답해야 한다.
문화예술인연대회의(가칭)는 지난 12일 ‘고 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요구’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연대회의는 우선 수사당국에 △수사 진행 도중 공보책임자의 부적법한 언론 대응이 없었는지 △3차례 소환 모두 고인의 출석을 공개한 점이 적법한 행위인지 밝힐 것을 요구했다. 또 언론 매체들은 혐의 사실과 동떨어진 사적 대화 등 공적 보도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내용의 기사를 삭제하라고 주문했다. 정부·국회에도 형사사건 공개 금지와 피의자 인권 보호 등을 규정한 현행 법령에 미비점이 없는지 점검하고 필요한 법령 개정에 착수해줄 것을 요청했다.
실제로 고인은 정식 입건 전 내사가 진행 중이던 지난해 10월19일 수사선상에 올랐다는 사실이 최초 보도된 이래 두달여 동안, 범죄 혐의가 확인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과도하게 언론 보도에 노출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밀감정을 위한 시약 채취부터 음성 판정까지 전 과정과 3차례에 걸친 경찰 소환 조사에 출석하는 모습이 모두 생중계되다시피 했다. 직접적 사건 관련성을 따지기 어려운 사적 대화가 담긴 녹음파일이 공개된 것도 고인을 짓눌렀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 성의 있는 답변은 나오지 않고 있다. 경찰은 강압수사를 진행한 적이 없고 절차에 따라 적법하게 수사를 이어왔다는 주장만 되뇌고 있다. 고인이 마지막 조사를 앞두고 비공개를 요청했지만 이를 묵살한 이유에 대해서도, ‘이미 출석일이 알려져 안전사고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납득하기 힘든 주장을 폈다. 이씨의 사적 통화 녹취를 보도해 삭제 요구를 받은 한국방송은 ‘고인 사망과 무관하다’며 일축했다.
이래서야 연예인 등 유명인의 경우 수사 과정에서 아무런 보호 장치도 없이 극도의 압박에 노출되는 상황이 또 벌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정부와 국회가 이제라도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수사당국이 법 취지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피의자 인권 보호의 원칙이 훼손되는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입법적 보완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