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과 법률 대리인단이 21일 오전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법정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대법원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에 대해 일본 전범기업들에 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놓자, 일본 정부가 주일 한국대사관의 정무공사를 초치하는 등 “결단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의했다. 적반하장이다. 지난 3월 윤석열 정부가 무리하게 밀어붙인 ‘제3자 변제안’이 일본 정부와 기업에는 면죄부를, 한국에는 족쇄가 된 상황을 여실히 드러냈다.
지난 21일 대법원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이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일본 외무성은 곧바로 김장현 주일 한국대사관 정무공사를 초치해 항의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재단(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지급할 예정이라는 취지를 이미 표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맞춰 한국 정부가 대응해나갈 것으로 생각한다”며 모든 책임을 한국 정부에 떠넘겼다. 지난 3월 윤석열 대통령이 발표한 ‘제3자 변제 해법’은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민간 기부금을 받아 재원을 마련해 일본 가해 기업을 대신해 배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니, 일본의 이런 반응을 스스로 자초한 셈이다.
일본의 오만한 훈계를 듣는 상황에도 한국 외교부는 제3자 변제안에 따른 판결금을 지급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일본을 향해선 한마디 언급도 없다. 제3자 변제안은 이제 현실적으로도 지속가능하지 않게 됐다. 여러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거부하고 있고, 법원도 피해자 의사에 반한다며 정부의 공탁 이의신청을 기각하고 있다. 재단이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판결금을 지급할 만큼의 자금도 없다. 지난 9월까지 포스코 등이 41억1400만원을 기부했는데 정부안을 수용한 피해자에게 지급한 자금 등을 제외하면 현재 가용 기금은 10억원도 남지 않은 것으로 추산된다. 이번 판결 배상금을 지급할 자금도 없고, 앞으로 이어질 판결에 대응할 돈도 없다.
해법은 현재 ‘제3자 변제안’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가해 일본 기업들이 기금을 내놓는 등 배상에 참여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제3자 변제안을 발표하면서, “일본이 남은 물컵의 절반을 채워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젠 한·미·일, 한·일 협력만 내세우며 국민들이 ‘역사를 망각’하기를 바라고 있는 듯하다. 역사가 그렇게 지워질 리 없다. 정부는 일본에 지속적으로 요구할 책임을 망각하지 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