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과 법률 대리인단이 21일 오전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 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법정 앞에서 재판을 마친 유족이 고인의 영정을 함께 들고 있다. 연합뉴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 전범기업들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대법 판결이 또 나왔다.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에 따른 당연한 판결이다. 윤석열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제3자 변제’가 사법부 판단에 정면으로 위배된 것임을 재확인했다. 60여건에 이르는 다른 강제동원 소송의 승소 가능성도 커져 제3자 변제안에도 비상이 걸렸다. 일본 전범기업 대신 배상하려고 조성한 기금이 총 배상금액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애초 사법부 판단을 무시하고 제3자 변제를 대책 없이 밀어붙인 탓이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유족이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일제의 식민지배와 강제동원의 불법성을 전제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2018년 대법원 전합 판결의 취지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 특히 이번 판결이 소멸시효 기산점을 대법 전합 판결이 내려진 2018년이라고 판단한 것은 다른 강제동원 소송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남은 60여건의 소송은 모두 2018년 이후 제기됐다. 미쓰비시중공업 등은 앞서 김능환 전 대법관이 주심을 맡아 처음 배상 판결을 한 2012년을 기산점으로 계산해 3년의 소멸시효가 이미 완성됐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법관 전원이 참여한 전합 판결이 내려진 뒤에야 비로소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상태가 됐다는 판단이다.
정부가 3자 변제를 위해 조성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의 기금은 포스코 등이 낸 40억원에 불과하다. 남은 소송의 원고는 110여명에 이르러 총 배상금액은 최소 15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앞서 3자 변제안을 발표하면서 기업 등이 참여한 민간기금으로 조성하겠다고 했지만, 일본 경제협력자금 수혜 기업인 포스코 외에는 참여한 기업이 없다. 재단 기금을 늘리지 않으면 3자 변제마저도 못 하게 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일본에 ‘통 크게’ 양보한 대가로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한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의 팔만 계속 비틀 것인가. 정부는 앞서 배상금 수령을 거부한 피해자에게 ‘강제 공탁’까지 하려다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윤 정부는 법리적으로 이미 파탄 났을 뿐만 아니라 실현 가능성도 희박해진 3자 변제를 더 이상 고집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