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사퇴한 다음날인 14일 오전 국회에서 윤재옥 원내대표 겸 대표 권한대행이 최고위원회의에서 머리발언을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김기현 대표가 사퇴하면서 국민의힘이 14일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당의 안정을 위해 이른 시일 안에 비대위를 띄운다는 계획인데, 위원장 후보로 거론되는 이들은 죄다 친윤석열 인사들이다. 위기의 근본 원인인 수직적 당정 관계에 대한 문제의식은 찾아볼 수 없다.
당대표 권한대행을 맡은 윤재옥 원내대표는 이날 비대위 전환 방침을 밝히며 “(새 비대위원장은) 국민 눈높이에 맞고 국민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분, 선거를 앞두고 총선 승리란 지상과제를 달성하는 데 능력과 실력을 갖춘 분으로 모색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당헌은 대표 잔여 임기가 6개월 이상 남으면 임시 전당대회를 열어 새 대표를 선출할 수 있도록 했지만, 총선이 눈앞에 다가온 만큼 비대위 전환이 현실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15일 비상 의원총회를 열어 후속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당대표 권한을 행사하는 비대위원장은 공천관리위원회와 선거대책위원회 등 선거 기구를 총괄하며 총선 업무 전반을 지휘하게 된다. 특히 김 대표의 사퇴가 ‘친윤 지도부’의 한계를 드러낸 것인 만큼, 이를 극복할 변화와 지도체제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 당 안팎에서 비대위원장으로 주요하게 언급되는 이들은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인요한 전 혁신위원장 등이다. 김한길 위원장과 한동훈 장관, 원희룡 장관 모두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이며, 특히 내각의 일원인 두 장관은 현 사태를 초래한 윤석열 정부의 실정에 공동책임을 지닌 이들이다. 인 전 위원장은 윤 대통령을 “나라님”이라 부르며 아예 혁신 대상에서 제외해 ‘빈손 혁신위’를 자초한 인사다. 윤 권한대행이 비대위원장 조건으로 제시한 국민 눈높이와 국민 공감, 총선 승리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이들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는 것 자체가 국민의힘이 수직적 당정 관계 청산은커녕 여전히 ‘용산 눈치보기’에 급급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김 대표의 선출에서부터 사퇴, 그리고 그 이후까지 모두 여전히 ‘윤심’에 의해 좌우되는 모양새다. 이렇게 해서 무슨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겠나.
김기현 전 대표는 집권당을 대통령실의 하부기관으로 전락시켜 민심 이반을 자초했다. 그러니 새 비대위는 당정 관계 정상화에서부터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현재 거론되는 인사들이 참여한 ‘윤심 비대위’는 ‘제2의 김기현’을 초래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