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4일 오전 서울 중구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중대재해처벌법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유예 추진을 비판하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4일치 한 조간신문 1면에 ‘중대재해 처벌법, 이렇게 준비하세요!’라는 제목의 정부 광고가 실렸다. 내년 1월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5명 이상 50명 미만 사업장에까지 확대 적용되는 것을 앞두고 해당 사업주들에게 준비사항을 안내하는 내용으로, 서울시·환경부·고용노동부·국토교통부 명의 광고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바로 전날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시행 2년 유예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한편에선 시행 유예를 공식화하고 다른 한편에선 시행 안내 광고를 낸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를 얼마나 졸속으로 다루고 있는지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대통령실과 정부·여당은 지난 3일 고위협의회를 열고,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시행을 유예하기 위한 법 개정에 나서기로 했다. 83만여곳에 이르는 확대 시행 대상 사업장들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2021년 제정된 뒤 준비 기간을 거쳐 지난해 1월부터 50명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행됐고, 5명 이상 50명 미만 사업장에는 이후 2년의 준비 기간을 더 거쳤다. 정부는 총 3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뭘 했기에 시행 날짜를 두 달도 남기지 않은 지금 또 시행 유예를 꺼내 드는 것인지 무책임하기 그지없다.
사업장들의 준비 부족을 이유로 드는 것은 정부의 의지 부족을 드러낼 뿐이다. 지난 3월 고용노동부가 한국안전학회에 의뢰해 50명 미만 사업장 1442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서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 의무 준수를 위해 필요한 사항을 갖췄느냐’는 질문에 22%가 ‘이미 모두 갖췄다’, 59%가 ‘준비 중이다’라고 응답했고, ‘준비하지 않고 있다’는 응답은 18%였다. 또 한국노총이 50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대비한 컨설팅 지원사업을 벌인 결과,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에 평균 3개월이 걸리고 비용은 약 3100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여전히 준비가 안 된 사업장들이 있다면 정부가 할 일은 서둘러 지원에 힘을 쏟는 것이지, 법 시행을 미루는 게 아니다.
노동부 자료를 보면, 지난해에도 644명이 산업 현장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 가운데 60%가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어난 사고다. 국민 생명과 직결된 문제를 정부·여당이 손바닥 뒤집듯 가볍게 다뤄도 되는가. 또 더불어민주당도 정부 사과 등 3개 조건을 걸며 법 유예 가능성을 열어뒀는데, 약자를 보호하겠다는 야당의 태도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