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수출투자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와 정치권이 내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의 전면 시행을 다시 2년간 유예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중대재해는 소규모 사업장에서 더 많이 발생하고 있는데도 경영계의 목소리만 듣고 법 적용을 미루자는 것이다. 정녕 중소기업의 안전관리 역량이 미흡하기 때문에 법 적용을 유예하자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정부가 3년간의 유예기간 동안 적극적인 지원 없이 손을 놓고 있다가 이제 와서 기업 경영활동의 위축을 염려하고 있는 탓이다.
2021년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지난해 1월 상시 노동자 50명 이상 사업장에 시행된 데 이어, 내년 1월27일부터는 5명 이상 모든 사업장에 확대 적용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50명 미만 사업장에 대해 법 적용을 2년 더 유예하는 법안을 밀어붙여왔다. 여기에 더불어민주당까지 최근 조건부로 법 적용을 미루는 논의에 나설 수 있다며 가세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23일 △준비 부족에 대한 정부 사과 △안전 확보를 위한 구체 방안 마련 등의 조건이 충족되면 검토하겠다고 한 것이다.
정부는 한술 더 떠 법 적용 유예를 적극 추진하는 모양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7일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법 적용 유예를 위한 법안을 연내 국회에서 처리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이미 국회에 적용 유예 의견을 제출했는데, 해당 자료에는 중소기업중앙회 성명과 경제6단체 설문조사 결과 등 기업 쪽 목소리만 빼곡히 담았다.
정부와 정치권은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중대재해로 인한 사망사고가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현실을 도외시해선 안 된다. 지난해 고용노동부의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현황을 보면, 50명 미만 사업장 사고가 60.2%를 차지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현장 목소리’라면서 법이 적용되면 기업 대표의 실형 가능성이 커진다는 경영계 우려를 그대로 국회에 전달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의 취지는 사업주가 경각심을 가지고 안전 관리에 힘을 쏟으라는 것인데, 거꾸로 정부가 기업 경영을 걱정해 법 적용을 미뤄주자고 해서야 되겠는가. 그동안 정부 컨설팅 지원을 받으면서, 혹은 자체적으로 법 시행에 대비해온 기업들도 적지 않다. 전면 시행을 고작 두달 앞둔 시점에서 유예기간을 연장하는 것은 사실상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하겠다는 신호를 산업 현장에 보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내년 총선에 몰두하느라 정책을 후퇴시키는 일이 더 이상 반복되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