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가 전국 시군구·읍면동 주민센터에서 민원 서류 발급 서비스를 재가동한다고 알린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창구에 민원 서류 정상 발급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행정 전산망이 마비되는 사건이 벌어진 지 나흘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원인 규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가 발생하게 된 원인이 밝혀져야 재발 방지 대책도 세울 수 있다. 이런 식이라면 국가기관의 전산망 사고가 언제 어디서 다시 발생할지 모르는 것 아닌가.
20일 행정안전부는 행정 전산망이 다시 정상화되어 민원 서비스가 재개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산망 장애를 복구한 뒤에도 민원서류 발급 등 대국민 서비스를 사흘간 마비시킨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전날 행안부는 “새올 행정시스템에 접속하는 인증시스템(GPKI)의 네트워크 장비(L4 스위치)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만 했다. L4 스위치는 공무원의 인증 요청을 어느 한곳에 몰리지 않도록 원활하게 인증 시스템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16일 밤 이 장비의 보안패치가 업데이트된 이후, 다음날 아침 8시40분쯤부터 행정 전산망이 먹통이 됐다.
하지만 행안부는 그 장비에서 어떤 부분이 문제를 일으킨 것인지 인과관계는 모른다고 했다. “되도록 빨리 규명하겠다”는 무책임한 답변만 이어졌다. 해킹을 의심할 만한 특별한 이상 징후가 없었고 장비 노후화로 발생한 문제도 아니라고 했다. “이중화되어 있는 대체 장비가 순차적으로 문제를 일으켰다”는 답변은 기자들이 ‘오류 발생 시 대체 수단은 없었느냐’고 질문한 뒤에야 나왔다. 그마저도 자주 발생하는 일이 아니라고 했을 뿐, 왜 대체 장비까지 문제를 일으킨 것인지에 대해선 묵묵부답이다. 또 장비 업데이트가 왜 휴일이 아닌 평일에 이뤄졌는지에 대해서도 납득할 만한 답변이 나오지 않았다. 정보보호 전문가들은 ‘L4 스위치 문제만이라면 복구에 그렇게 장시간 걸렸을 리 없다’며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정부가 파장을 축소하기 위해 투명한 원인 공개를 꺼리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거진 상태다.
행안부는 21일부터 ‘지방행정 전산서비스 개편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근본적으로 이번 사태는 정부의 총체적 관리 부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투명한 원인 조사는 물론이고 비상 대응 매뉴얼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 작동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규명되어야 한다. 이전처럼 행정 전산망의 유지·보수를 맡고 있는 외주업체 한두곳에 책임을 지우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해서는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