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10월19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 사건을 봐준 혐의로 고발된 당시 담당 검사들을 불기소 처분했다. 2013년 이 사건이 처음 터졌을 때 검찰이 김 전 차관을 무혐의 처분한 것이 의도적으로 봐준 게 아니라는 판단이다. 하지만 검찰이 2019년 재수사에 착수해 김 전 차관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로 기소할 때에는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이 “과거 수사 때 왜 이걸 밝혀내지 못했는지가 더 부끄럽다”며 사과까지 한 바 있다. 검찰의 이런 행위를 처벌하라고 만든 공수처가 오히려 검찰을 변호하고 나선 꼴이다. 이러니 ‘공수처 폐지론’이 나오는 게 아닌가.
공수처가 밝힌 불기소 처분 사유는 듣기 민망할 정도다. 공수처는 당시 ‘스폰서’ 건설업자 윤중천씨가 김 전 차관에게 뇌물을 준 것을 부인했다는 점을 들었다. 이로 인해 검사들이 김 전 차관의 특가법상 뇌물 혐의를 인지할 수 없었다는 논리다. 하지만 피의자가 공범의 혐의를 부인하는 건 수사에서 흔한 일이다. 자신의 죄가 더 무거워지는데 순순히 혐의를 인정할 피의자가 어디 있나. 이런 점을 고려해 검사에게 압수수색과 같은 강제수사 권한을 준 것이다. 그런데도 당시 수사팀은 김 전 차관의 휴대전화 압수수색은 물론 계좌추적도 하지 않았다. 앞서 경찰이 피해 여성들과 윤씨 운전사의 진술 등을 근거로 신청한 압수수색 영장은 모조리 기각했다. 경찰 수사를 ‘지휘’한 게 아니라 사실상 ‘방해’했다. 이런 사실은 2019년 재수사 때 이미 다 확인된 것들이다. 굳이 서울중앙지검을 압수수색해 10만쪽에 이르는 수사기록을 검토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다. 공수처는 정작 당시 수사 검사 3명 중 현직에 있는 2명은 서면조사도 하지 못했다. 떠들썩하게 수사 시늉만 낸 셈이다. 그래 놓고 “실체적 진실 규명에 최선을 다했다”고 자평하다니 부끄럽지 않은가.
공수처는 국민의 검찰개혁 바람을 실현하기 위해 만든 기관이다.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를 비롯한 기소권 남용을 견제하는 것은 공수처의 존재 이유다. 이번 결정은 공수처 스스로 존립 이유를 부정한 사례로 남을 것이다. 공수처에는 지금 감사원의 ‘전현희 표적감사’ 의혹과 ‘해병대 수사 외압’ 사건도 고발돼 있다. 이 사건들에도 수사 시늉만 낸다면 공수처 폐지 여론은 더욱 커질 것이다. 해마다 200억원 가까운 세금을 이렇게 낭비할 순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