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서울 용산구 의협에서 열린 ‘의대정원 확대 대응을 위한 긴급 의료계 대표자 회의’에서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가운데)이 참석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실과 여당, 정부가 연일 의과대학 정원 확대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구체적 실행 방안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정책 추진의 핵심 변수인 의료계 반발을 고려해 충분한 사전 논의를 거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 발표가 예상보다 늦어질 것으로 보이면서 증원 규모를 두고 여러 관측이 난무하며 혼선을 키우고 있다. 혹여라도 집권당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국면전환용으로 내민 것이라면 향후 정책이 제대로 추진될 리 만무하다.
의대 정원 확대 방안은 원래 19일 열리는 정부의 ‘지역완결적 필수의료 혁신전략’ 회의에서 발표될 것으로 봤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치른 지 이틀 만에 정부 쪽 의지를 담은 관련 보도가 흘러나오기 시작하면서 이런 관측에 힘이 실렸다. 지난 15일 고위 당정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된 것으로 전해지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의대 정원을 1천명 이상 늘리는 방안을 직접 발표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이미 ‘응급실 뺑뺑이’와 같은 필수의료 공백에 따른 문제가 여러 차례 노출된 만큼, 의대 증원은 정부의 추진 의지와 결단이 필요한 문제였다. 야당도 원칙적으로 의대 증원에 공감하는 입장을 밝히면서, 오랜만에 여야가 협치에 나설 정책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책 추진이 급물살을 타는가 싶더니 정부·여당은 다시 숙고에 들어간 모양새다. “의대 정원 확대 규모와 방식에 대해 충분한 논의와 의견수렴을 통해 추진한다”는 기존 입장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현재로선 19일 회의에서 정부안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러는 사이에 의대 증원 규모를 두고 여러 관측이 무성하다. 2000년 의약분업 이후 감축된 351명을 복원하는 방안부터 512명, 1천명 이상, 최대 3천명까지 늘리는 방안이 흘러나오면서 혼선만 커지고 있다.
지난 17일 의사단체들이 긴급 대표자 회의를 열어 “정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하면 2020년 파업 때보다 강력한 투쟁을 접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인가. 보건복지부는 올해 1월부터 14차례에 걸쳐 의사협회와 의대 정원 문제를 논의해왔지만 거의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 문제는 더 이상 의사 단체와 협의하는 것만으로 추진할 사안이 아니다. 의료 수요자 중심으로 정부안을 마련한 뒤 이해당사자에 대해 협조를 구하는 게 순서다. 집권 여당이 정책 문제를 가지고 내년 총선 표 계산에만 골몰하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선 안 된다. 정책 추진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