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9월5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검찰단에 출석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한 박정훈 대령(전 수사단장)에게 항명죄를 씌운 게 억지였음을 보여주는 정황이 또 드러났다. 박 대령은 직속상관인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는 혐의로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를 받고 있는데, 정작 김 사령관은 박 대령의 행위가 정당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대로라면 항명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셈이다.
시민단체 군인권센터는 지난 24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박 대령과 함께 채 상병 사건을 수사한 해병대 중앙수사대장과 통화한 내역을 공개했다. 김 사령관은 통화에서 “어차피 우리는 진실하게 했기 때문에 잘못된 건 없어”라고 말했다. 통화가 이뤄진 날은 박 대령이 사단장 등 지휘부에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경찰에 이첩했다는 이유로 보직해임 통보를 받은 지난달 2일이다. 김 사령관은 “이렇게 하다가 안 되면 나중에 (박 대령이) 내 지시사항을 위반한 거로 갈 수밖에 없을 거야”라는 말도 했다. 이후 박 대령에 대한 항명죄 수사가 시작됐다. 김 사령관 발언과 실제 상황 전개를 종합해보면, 군검찰이 박 대령을 옭아매기 위해 억지로 항명죄를 적용한 정황이 뚜렷해진다.
김 사령관은 그동안 “군의 엄정한 지휘와 명령 체계를 위반하는 군 기강 문란 사건까지 있었다”(지난달 25일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는 등 박 대령의 항명 사실을 인정하는 입장을 보여왔다. 이와 상충하는 본인의 발언이 드러난 만큼 어느 게 맞는 말인지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박 대령의 정당함을 뒷받침하는 정황은 한둘이 아니다. 앞서 공개된 국방부 검찰단의 박 대령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국방부 장관이 ‘혐의자를 특정하지 말라’며 채 상병 사건 수사에 외압을 가하는 지시를 했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이렇듯 박 대령에게 수사 외압이 있었고 박 대령은 이에 굴하지 않고 원칙대로 임무를 수행했다는 게 갈수록 명확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은 ‘꼬리 자르기’ 하듯 개각 대상에 올랐다. 이번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 핵심적인 인물인 대통령실 임종득 국가안보실 2차장과 임기훈 국방비서관도 이례적으로 동시에 교체됐다. 참 비겁한 정부다. 군검찰은 항명죄 수사를 당장 중단해야 하고,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과 수사 외압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국정조사와 특검 수사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