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 국방장관이 6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대정부질문에 출석,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에 대해 ‘혐의자를 특정하지 말고 경찰에 이첩하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이 국방부 검찰단의 공식 문서에 적시된 것으로 드러났다. 국방장관이 병사 순직의 진상 규명을 막으려 부당하게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군검찰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국방부 검찰단이 지난달 30일 군사법원에 제출한 해병대 전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의 구속영장 청구서를 보면, 정종범 해병대 부사령관이 “혐의자를 특정하지 않고, 경찰에 필요한 자료만 주면 된다”는 ‘장관 지시사항’을 전달했다는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의 진술이 기재돼 있다. 지난 7월31일 정 부사령관이 국방부 회의에 참석해 이종섭 장관의 지시를 받았고, 해병대 사령부로 돌아와 관련 내용을 김 사령관 등에게 전달했다.
국방부 검찰단이 작성한 이 구속영장 청구서는 국방부와 이 장관이 그동안 거짓말을 해왔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 장관은 지난 4일 국회에 출석해 “혐의자를 포함시키지 않고 (경찰에 자료를)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뻔뻔하게 위증을 한 것 아닌가. 국방부는 구속영장 청구서 내용이 드러난 뒤에도 이 장관은 ‘범죄 혐의를 특정하지 않고 사실관계만 적시하여 이첩이 가능하다’는 법무관리관의 보고 내용을 수사단장에게 설명해주라고 지시했을 뿐이라고 변명했다. 이미 사단장 등 8명의 혐의를 특정한 수사단장에게 저런 설명을 하라는 것 자체가 ‘혐의를 빼라’는 지시와 뭐가 다른가.
채 상병이 7월19일 집중호우 피해 실종자 수색 작업 중 급류에 휩쓸려 순직한 지 50일이 지났다. 그동안 스무살 병사의 죽음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들의 처벌은커녕, 유족과 국민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사 결과 왜곡과 외압이 거듭되어왔다. 구체적 외압을 행사한 증거까지 드러난 만큼 이 장관은 더 이상 국방장관의 자리를 지켜서는 안 된다.
거짓말과 은폐 시도를 계속해온 국방부에 더 이상 수사를 맡길 수도 없다. 국방부는 박정훈 대령에게 이해할 수 없는 항명죄를 씌우려 했고, 박 대령이 ‘해병대 1사단장의 과실치사 혐의에 대해 대통령이 분노한 뒤 수사기록이 회수되었다’는 취지로 진술하자 국방부 검찰단이 곧장 박 대령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등 무리수를 거듭해왔다. 더불어민주당은 7일 ‘해병대원 사망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특검법’을 발의했다. 채 상병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국회 국정조사와 특검 등의 중립적 수사를 더는 미룰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