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년 예산안 및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발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656조9천억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을 29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증가율이 2.8%로 올해(5.1%)보다 큰 폭 낮춰졌다. 정부 재정 통계를 현재의 총지출 기준으로 개편한 2005년 이래 가장 낮다. 내년 경상성장률 전망치(4.9%)를 한참 밑도는 초긴축예산이다. 내년 경제 상황이 호황과는 거리가 멀 것으로 예상되는 국면에서 이런 긴축예산 편성은 재정운용의 상식을 크게 벗어난다.
정부는 이런 예산 편성에 대해 “건전재정을 지켜내기 위한 고심 어린 결정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큰 폭으로 세수가 줄어드는 가운데 국가부채를 크게 늘리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정책 공약을 이행하려고 이런 무리한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본다. 정부는 내년 국세 수입을 367조4천억원으로 예상하는데, 이는 2022년 세수 395조9천억원보다 28조6천억원이나 적다. 법인세수가 2022년보다 24조9천억원 줄고, 종합부동산세도 2조7천억원 줄어들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지난해 단행한 감세정책에다 경기 부진이 겹쳐 세수가 급감해, 정부 재정운용 발목을 잡은 모양새다.
사정이 이렇다면 무리한 감세부터 철회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정부는 올해 세수펑크가 얼마나 될지 추계까지 미루면서도, 향후 5년간 3조1천억원 규모의 추가 감세를 하는 내용의 2023년도 세제 개편안을 지난달 27일 내놓은 바 있다. 내년 예산안은 정부 지출을 대폭 줄이는 쪽을 택했다. 정부는 연구·개발(R&D) 예산 7조원, 보조금 4조원 등 기존 예산 23조원을 삭감하고 예산 구조조정을 했다고 밝혔다. 그랬음에도 내년 국내총생산 대비 관리재정수지가 -3.9%로, 정부가 재정준칙을 만들자며 제시한 기준(-3.0%)을 넘어섰다.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재정 건전성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나라살림 운용은 재정적자 비율이나 국가부채 비율을 낮추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재정이 지속가능한 범위에서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제때,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산 삭감 세부 내역은 정부가 국회에 예산서를 넘긴 뒤 따져볼 일이지만, 초긴축 편성한 것만으로도 우려스럽다. 경기는 아직 회복 기미가 뚜렷하지 않고, 내년에도 나아지기는 하겠지만 회복 정도에 대한 전망이 계속 나빠지고 있다. 민간 소비와 투자의 부진을 정부가 보완해줘야 할 상황이다. 세수 감소에 쫓겨 무리하게 짠 초긴축예산이 성장률을 갉아먹고, 성장잠재력도 훼손하지 않을지 우려가 크다.